‘라면 퉁퉁 붇는데, 회장님은 딴 생각만…’
삼양식품 CI. 삼양식품 홈페이지 캡쳐.
식품업계에선 삼양식품의 이번 가격 인상으로 오뚜기와 팔도 역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4~5년간 라면 생산업체는 ‘평균판매단가’(ASP)가 오르지 못해 가격 인상 유혹을 받아왔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4월 28일자 ‘기업 코멘트’에서 “라면 회사 모두 ASP를 인상시킬 것”이라며 “삼양식품 외에도 팔도, 오뚜기 순으로 실질적으로는 라면 ASP를 모두 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간 라면업계는 점유율 1위인 농심이 권장소비자가격을 올리면 후발 주자들이 따라 올리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그런데 삼양식품의 이번 인상은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16%대였던 점유율은 2014년 13.3%, 2015년 11.4%, 2016년 11.0%까지 추락했다. 라면 시장은 권장소비자가격을 인상할수록 점유율이 일부 하락하는 특성이 있다. 업계 4위인 팔도와 비슷한 점유율을 보이는 삼양식품으로서는 추가적인 점유율 하락으로 3위 자리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우리가 업계 3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팔도의 주력 상품인 ‘비빔면’이 잘 팔리는 여름이 고비”라고 말했다.
식품업계에선 경쟁업체보다 삼양식품이 먼저 가격을 인상한 배경에 ‘숨은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표면적인 이유로 든 원가 상승 요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주요 원재료 가격은 대부분 하락했다. 1kg당 밀가루(전용5호, 강력1급) 가격은 40~50원 하락했고, 팜유 가격 역시 100원 이상 떨어졌다. 전분 가격이 7원가량 올랐지만 전체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등 원료 가격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인건비 지출이 늘어 식품회사들이 받는 가격 압박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삼양식품의 인건비 지출은 2013년 368억여 원에서 2016년 420억여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직원 수는 100명 이상 늘어 1243명으로 나타났다. 또 삼양식품은 주력 생산기지인 원주공장 내 신규 생산라인을 증설하기 위해 199억 원을 투자했다. 제품 가격을 높여야 할 내부 요인이 있는 셈이다.
삼양식품 서울 본사. 삼양식품 홈페이지 캡쳐.
특히 삼양식품의 국내 매출은 2014년 2313억 원에서 2015년 2071억 원으로 하락했고, 2016년에는 2201억 원을 기록했다. 오너 2세인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이 취임한 2010년 이후 당기순이익은 188억 원에서 2014년 40억 원으로 줄었다. 2015년에는 3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히트상품인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2016년 흑자 전환했지만 삼양식품의 최근 몇 년간 경영실적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외식사업에서는 번번이 손실을 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심 등 라면 회사의 가격담합을 적발했을 때 ‘리니언시’(자진신고)로 빠져나간 것인데, 이 때문에 삼양식품은 업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혔다. 농심은 심지어 2015년 공정위를 상대로 한 과징금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삼양식품은 ‘정직’과 ‘신용’을 기업 이념으로 삼고 있다. 창업주인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식량난을 겪는 국가를 위해 라면 기술을 이전해왔다는 미담은 지금껏 회자된다. 실제 삼양식품은 소비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으로 명성이 높다. 2010년에는 “밀가루값이 하락했다”며 제품 가격을 인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너 2세인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사진)이 취임한 2010년 이후 당기순이익은 188억 원에서 2014년 40억 원으로 줄었다. 2015년에는 34억 원의 당기순손실까지 기록했다.
이번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은 일반 소비자보다 삼양식품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특약대리점(도매상)이 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대형마트보다 일반적으로 비싼 값에 라면을 공급받고 이를 다시 소매상에 판매해 마진을 남긴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오른 만큼 특약점이 제품을 공급받을 때 지불하는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격 인상에 따른 점유율 하락으로 재고가 증가하면 그만큼 특약점이 타격을 입는 구조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전체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특약점만 부담을 지진 않을 것”이라며 “재고 물량은 각 특약점이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