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연예인 데뷔 권하며 계약서 사인 받고 AV촬영 강요…‘원정녀’ 시리즈 등 역수입도
일본 AV 업계가 한국을 주목한 것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일본 내 한류가 절정의 인기를 얻었던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당시 일본 AV업계에서 ‘한복 포르노’를 제작했는데 일본 현지에선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화제를 양산하며 엄청난 비난 여론을 형성한 바 있다.
가장 충격적인 콘텐츠는 지난 2005년 일본 유명 AV 제작업체인 ‘소프트 온 디맨드’(SOD)에서 제작한 <하이퍼 매직미러호 in 한국>이다. ‘하이퍼 매직미러호’는 당시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난파> 시리즈에 등장한 특수 포르노촬영세트 차량으로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는 ‘반사유리’를 이용해 어느 거리에서 촬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활용한 <난파> 시리즈는 길거리 헌팅 형식의 포르노였고 <하이퍼 매직미러호 in 한국> 역시 한국에서의 길거리 헌팅 형태의 포르노였다.
일본 AV 숍.
명동과 동대문 등 한류를 통해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한국 거리에서 한국 여성을 헌팅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는 모두 13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데 대부분 성에 개방적이다. 200만 원을 제시하는 일본 남성 출연자의 제안에 상당수의 여성이 응해 포르노 영상을 촬영한다. 그렇지만 <하이퍼 매직미러호 in 한국>는 실제 한국 여성을 길거리 헌팅해서 촬영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 여성 대부분이 일본어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데다 한국어는 다소 어눌하다. 결국 일본 AV 배우들이 한국 여성인 척 연기를 하며 길거리에서 헌팅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었다.
일본 현지에서 한류가 워낙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터라 이와 유사한 한국을 소재로 한 AV가 제작되곤 했지만 크게 화제가 되진 못했다. 아무래도 일본 내 한류를 주도한 것은 중장년 여성이었던 데 반해 AV 시장은 남성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나마 일본에서 한류의 기세가 꺾이면서 이런 흐름도 끊겼다.
문제는 불법 콘텐츠 시장을 강타한 원정녀 시리즈였다. 먼저 화제가 된 곳은 일본이었다. AV 제작 업체가 정식으로 출시한 AV가 아닌 일본 성인사이트에 올라온 불법 몰카 콘텐츠로 일본에서의 제목은 ‘한국 연예계의 슬픈 사정’이었다. 그것도 시리즈로 무려 21편이나 됐다. 마치 한국 연예인이 출연한 듯한 제목이지만 연예계와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대신 일본 원정 성매매에 나선 한국 여성들의 성매매 현장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것이었다. 일본 성인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한국 연예계의 슬픈 사정’ 시리즈는 한국으로 역수입됐다. 한국 불법 콘텐츠 유통 사이트에서 해당 몰카는 ‘원정녀’ 시리즈로 이름이 붙어 유통됐다.
이로 인해 원치 않게 몰카에 출연하게 된 여성들은 곤란해졌다. 성관계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몰카가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불법 유통되고 있다는 부분도 치명적이지만 일본 원정 성매매라는 불법 행위를 한 부분에 대한 사법 처벌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원정녀 시리즈 파문을 계기로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일본으로 보내 성매매를 시킨 부산의 사채업자와 폭력배, 유흥업소 관계자 등을 입건했으며 원정 성매매에 나선 여성 43명도 입건됐다. 한국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몰카를 촬영해서 유포한 일본인 남성의 신원을 확보해 일본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요즘까지 원정녀 시리즈는 불법 유통되고 있으며 비슷한 형태의 아류작 원정녀 시리즈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국내 불법 콘텐츠 유통 사이트에서 한국 여성이 출연한 일본 AV가 종종 화제가 되고 있다. 아예 ‘한국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밝힌 일본 AV가 있는가 하면 출연 여성이 한국말을 하는 장면이 나와 네티즌들이 한국 여성 출연작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AV도 있다. 한국 연예인 지망생이 출연했다고 알려진 일본 AV는 최근 일본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AV 강제 출연 피해 사례와 유사점이 많다. 모델이나 연예인 데뷔를 권하며 결국은 AV 출연을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수법이 ‘한국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콘셉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일본 AV에 출연한 한국 여성이 정상적인 출연 계약에 의한 것인지, 협박이나 강요로 인해 원치 않는 상황에서 AV에 출연하게 됐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사안이 워낙 예민한 터라 피해 여성들이 직접 나서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 일본에서도 의혹만 무성할 뿐이던 상황에서 지난해 여름 한 20대 여성 피해자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까지 드러내며 피해 사례를 공개한 게 시발점이 됐다. 이후 다른 피해 여성들이 동참했고 정치권까지 나서게 됐다. 결국 유사한 피해를 입은 한국 여성들이 존재할지라도 그들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는 의혹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행여 정식 계약을 한 뒤 일본 AV에 출연할지라도 2차 피해가 크다. 그렇게 찍은 AV가 일본에서만 유통되면 국내에서는 별 화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 정식 출시를 하지 않았어도 불법 콘텐츠 유통 사이트들을 통해 금세 국내에서도 유통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인이 출연했다고 알려질 경우 일본 현지보다 국내에서 더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