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들 롤러코스터 탈 때 나홀로 고공비행…TV토론 후 격차 벌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이 확정된 9일 밤 대국민 인사를 위해 서울 광화문 세종로 소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6월 초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은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처음 이름을 올린 반 전 총장(24.1%)은 6월 1주차 조사에서 당시 문 후보(23.2%)를 오차범위 내인 0.9%p 차이로 제쳤다. 문 후보는 반 총장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고 20주 연속 이어오던 선두 자리를 내줬다. 반 전 총장은 단숨에 보수 진영 구세주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위기를 맞았다. 중도 보수층이 반 전 총장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각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각축을 벌였다. ‘문-반’ 양자 구도는 올해 2월 반 전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지속됐다. 귀국 직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 프레임으로 문 대통령의 ‘정권 교체’ 구호에 맞섰다.
하지만 ‘반기문 대망론’은 한계를 드러냈다. <리얼미터> 1월 3주차 주간동향에 따르면 문재인(29.1%), 반기문(19.8%), 이재명(10.1%), 안철수(7.4%) 순이었다. 문 대통령은 반 전 총장을 오차범위 밖으로 제쳤다. 반 전 총장은 친동생 미국 검찰 기소, 캠프 내부 갈등설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결국 반 전 총장은 설날 이후 전격 불출마를 선언했다(이번 조사는 2017년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전국 성인 2520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 15.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자세한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반 전 총장 불출마로 문 대통령 대권 도전은 한결 수월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 묘한 기류가 확산됐다. 2월 중순 이후 친노계의 ‘다크호스’ 안희정 충남지사가 치고 올라왔다. 안 지사는 대연정과 협치 발언으로 중도보수층을 공략했다. <리얼미터> 2017년 2월 3주차 차기대선 다자 지지도 조사에 의하면 문재인(32.5%), 안희정(20.4%), 황교안 (14.8%) 안철수(8.8%) 순이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1위를 내달렸지만 안 지사는 민주당 대통령 경선을 앞두고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이번 조사는 2017년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전국 성인 2521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은 8.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문 대통령과 안 지사는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양 측은 뜨거운 네거티브 공방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안 지사의 선의 발언을 공격했고 안 지사는 문 대통령의 ‘전두환 표창’ 발언을 문제삼았다. 여기에 이재명 성남시장의 가세로 경선은 3파전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판’을 뒤집을 만한 도전자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4월 3일 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선출됐다. 총 314만 4840명이 민주당 경선에 참가했고 이중 164만 2640명이 투표(투표율 76.6%)했다. 문 대통령(93만 6419표, 득표율 57.0%)은 안 지사(35만 3631표, 21.5%)와 이재명 성남시장(34만 7647표, 21.2%)을 ‘더블 스코어’차로 압도했다.
4월 이후 문 대통령은 또 한 차례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반기문-황교안-안희정’을 향했던 중도 보수층의 지지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쏠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선두를 유지했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순식간에 ‘문재인 대항마’로 떠올랐다.
<한국갤럽>이 4월 4일 실시한 4월 1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차기 대선 5자구도 지지율은 문재인(38%), 안철수(35%), 홍준표(7%) 유승민(4%), 심상정(3%) 순이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쳤다. 곧이어 문안 양자구도를 알리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쏟아졌다(이번 조사는 4월 4~6일 3일간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23%).
TV 토론은 문 대통령에게 위기 돌파의 ‘모멘텀’을 만들어줬다. 5명의 대선 후보들이 TV 토론에서 수차례 공방을 벌인 뒤 판세는 급변했다. 안 후보는 토론 과정에서 “제가 갑철수냐, 안철수냐” 등 황당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안 후보 부인 김미경 교수의 갑질 의혹과 서울대 카이스트 채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 대통령과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리얼미터>가 1차 TV토론 4월 13일 당일과 익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자 가상대결에서 문 대통령(44.8%)은 안 후보(31.3%)에 오차범위(±3.1%p) 밖인 13.5%p 앞섰다. 홍준표(10.3%), 심상정(3.5%), 유승민(3.2%)이 뒤를 이었다. 안 후보 지지율은 4월 1주차 주간동향 대비 2.8%p 떨어졌고 문 후보 지지율은 2.6%p 올랐다(이번 조사는 13~14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이며 응답률은 9.8%).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가 치고 올라올 때 이쪽저쪽에서 위기라고 했었다. 하지만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걱정을 많이 하진 않았다. TV 토론에서 안 후보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전했다.
홍준표 유승민 등 보수 진영 후보들은 송민순 회고록, 주적논란 등의 질문으로 문 대통령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지만 문 대통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었다. 전계완 평론가는 “문 대통령은 TV 토론으로 아찔했던 순간을 극복했다. 문 대통령이 5년 전에 비해 TV토론을 너무 잘했고 비교우위를 확실히 보여줬다. TV 토론으로 안정감과 노련미를 보여주면서 기사회생했다”라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TV토론이 열린 5월 2일 이후 여론조사에서 승기를 굳혔다. 리얼미터의 공표금지 직전 안심번호 19대 대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42.4%) 홍준표(18.6%) 안철수(18.6%) 심상정(7.3%) 유승민(4.9%) 순이었다(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인 2017년 5월 1일과 2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13.5%).
전계완 평론가는 “보수 진영 후보들의 색깔론이 지나쳤다. 구체적인 정치행위에 대한 평가였다면 보수진영 후보들이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회자했던 NLL 논란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은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토대로 행해졌다. 하지만 홍 후보의 색깔론은 막무가내식 덮어 씌우기였다. 근거 없이 문 대통령을 친북 좌파로 몰아세우니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안보 드라이브를 강화할 빌미만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