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은 ‘펌프질’ 청와대는 ‘쓸어담기’
▲ 친이계인 박희태 대표는 개헌론이 시기상조임을 강조하고 있다. | ||
MB 측이 개헌 논의를 ‘내년 이후’로 늦추자며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작금의 경제난부터 먼저 해결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박희태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며 경제를 살리고 국민에게 정권의 안정감을 줘야 할 때”라며 “현재 터져 나오는 개헌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권력구조에 대한 ‘원 포인트’(One Point) 차원이 아니라 헌법 이념부터 남북관계, 영토·경제 조항 등에 이르기까지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엄청난 주장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각 계층과 분야에서 자기 이익을 헌법에 반영시키려는 논쟁이 일어나면 어디로 표류할지 모른다. 개헌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가 제시하는 개헌 공론화의 시점은 “정치·경제적 안정이 이뤄지면 내년쯤에나”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아예 ‘조기 개헌’ 주장에 “갑갑하다”, “박근혜 전 대표와는 생각이 다르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금 나라 상황이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고, 그중에서도 민생 경제가 가장 악화돼 서민들이 고유가·고물가로 고통 받고 있는 터에 정치권이 ‘내각제냐, 중임제냐’는 논쟁을 벌이는 한가한 모습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 역시 “개헌 논의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한다.
정치권에서 MB계가 일종의 ‘상황논리’를 내세워 개헌 공론화를 미루려 하지만 본질적으론 ‘개헌 논의=레임 덕 발생’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이 과정에서 MB의 실정과 리더십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란 점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헌 문제를 고리로 MB 후계구도에 대한 논의가 조기에 확산될 경우 계파 간 역학구도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도 더해진다.
개헌의 ‘개’자도 당분간 꺼내지 말자는 MB계와는 달리 박근혜 전 대표는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하며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며 맞서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싱가포르를 방문 중이던 지난 7월 17일 현지에서 수행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개헌은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여야 간에 다음 정권하에서 추진하자는 데 거의 공감대가 이뤄진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친김에 선호하는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저는 일관되게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해 왔다”고 제시했다.
▲ 박근혜 전 대표는 개헌론에 불을 지펴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 ||
그러나 박 전 대표는 MB계가 개헌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마당에 ‘재를 뿌리고’ 나섰다. 당장 여권 내에선 박 전 대표의 싱가포르 발언 배경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박 전 대표 측 한 중진은 “제헌절을 전후해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박 전 대표가 어떤 식이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비주류 수장(首長)이란 한계에다 복당 문제가 매듭지어지면서 당 내에서 이렇다 할 활동공간을 찾기 어렵게 된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개헌 문제를 한번 터치해 보고 싶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개헌 찬성론이 월등히 많음에도 MB 측이 ‘입막음’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개헌 얘기가 나오면 MB의 레임덕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대세로 굳어진 개헌을 놓고 MB 측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론화 시기를 늦추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 측근은 또 “박 전 대표와 MB 사이에서 개헌 문제는 본질적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박 전 대표가 MB 측과 대립각을 뚜렷이 세우고 나선 것은, 그래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MB가 진정성을 갖고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대하지 않는다면 박 전 대표 역시 MB의 국정 운용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헌 공론화의 시기와 권력구조 등을 둘러싼 여권 내 논의가 활발한 데 반해 민주당 등 야권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987년 개헌 이후 21년간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꼭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지금 국회는 보수세력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당리당략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먼 장래를 보고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개헌 논의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지적에 “개헌 연구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원별로 바람직한 개헌 방향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등에 대해 조용하게 연구하는 것이 좋다”고 해명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