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나은 내일 위해 ‘한국어 열공중’
한국어학당 서부 브랜치 현판 앞에 선 떼떼와 나리.
떼떼는 열일곱 살, 11학년인 여학생입니다. 하이스쿨 졸업시험을 치르고 대학입학을 기다립니다. 이 마을에 한국어 브랜치가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달려온 학생입니다. 중고생들은 무료입니다. 여덟 형제자매 중 일곱째로 노래를 좋아합니다. 부모님은 시장골목의 포차에서 국수, 대나무 고치 등을 팝니다. 떼떼는 조용한 성격이고 커서 이 마을의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대학엘 꼭 가야 합니다. 한국어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두 달 만에 읽고 듣습니다. 쓰고 말하는 건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우리가 간단히 얘기하는 걸 알아들을 정도입니다.
스물한 살 청년 나리. 본명은 조우 나이인데, 나중에 한국 가면 쓰라고 제가 ‘나리’라고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이 청년은 중학교를 마치고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합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습니다. 나리도 형제자매가 일곱이나 됩니다. 언젠가 한국에 취업해 일하고 돌아오면 꽃을 키우는 농장을 하는 게 꿈입니다. 그래서 꽃 이름 ‘나리’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부릅니다. 착하고 밝아 인기 있는 청년입니다.
바간의 마부 코나이가 혼자서 한글을 배워 한국 관광객에게 가이드를 하겠다고 한다. 망고철이라 바싹 구운 난피야에 망고를 올려 먹곤 한다.
양곤을 떠나 중부 큰 도시로 왔지만 시골 오지에서는 큰 도시로 공부하러 올 수가 없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찾아가는 교육’입니다. 먼 동서남북에 브랜치를 만들었습니다. 15시간 걸리는 곳도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이 브랜치에서 영어와 농업기술도 가르치게 됩니다. 한국에서 은퇴했더라도 재능 있는 분들이 오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나라에 와서 절실히 바라는 것은 농촌이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독일의 농촌처럼. 그러나 이 나라에 없는 것이 한국에 있고 한국에 없는 것이 이 나라에 있습니다. 그것은 땅입니다. 또 교육과 기술입니다.
땅만 있고 교육과 기술이 없는 나라, 미얀마. 교육 중에서도 언어교육, 기술 중에서도 제1차 농축수산 기술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등 언어교육은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 유리합니다. 젊은이들의 언어공부는 나중에 큰 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정규교육에서 아쉬운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술입니다. 여기 아이들이 그림, 데생, 공작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지만 교육시간이 없습니다. 미술 기초교육이 있어야 디자인산업이 발전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손재주가 많다고 합니다. 섬세한 작업은 잘하지만 창의력이 없는 것은 그 까닭입니다.
잉와마을 바나나 숲 사이로 치즈공방이 세워졌다. ‘풍요로운 농촌’을 위한 첫걸음이다.
인근마을 잉와의 바나나 숲 사이로 자그만 치즈공방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치즈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라 우리가 정말 정통치즈를 만들 수 있을지 반신반의합니다. 주민들은 한국의 식품가공 기술을 지켜봅니다. 요즘은 한창 내부 설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좋은 제조 설비기기들이 많은데 비싸서 구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즈 배트 등 기기들을 공장을 돌아다니며 싸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를 사서 용접을 해서 만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화덕도 벽돌로 만듭니다. 모두 이른바 ‘미얀마 스타일’입니다.
바간에 가면 마부로 일하는 가장 코나이가 있습니다. 마차를 타며 알게 된 친구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9살 된 말과 함께 삽니다. 혼자 일해서 아픈 부모님과 부인과 두 아이를 먹여 살립니다. 요즘은 바간 유적지도 오토바이와 택시가 영업을 하니 공치는 날이 많습니다. 영어는 곧잘 하는데 한국관광객이 오면 대화가 안 됩니다. 몇 시간을 멍하니 가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가 DVD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어와 영어는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언어입니다. 서부와 중부의 시골 마당에서 청년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한국어 공부를 합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청년이 강사입니다. 마당의 비닐천장으로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너무 좁아 울타리 밖 오토바이 위에서도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밑줄을 그으며 공부합니다.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개조한 시골 마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청년들. 비좁아 울타리 너머에서도 앉아 공부한다.
오늘은 브랜치 인근 마을의 한 마당에서 제가 실기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울타리 바깥까지 청년들이 가득합니다. 제가 마이크를 듭니다. 한국인 육성을 처음 듣는다고 합니다. 시험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학생에게 마치 면접관처럼 물어봅니다. 자기 소개해보세요. 그 청년이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리안입니다. 스물두 살이고 바간에서 왔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 삽니다. 동생이 여섯 명 있어요. 지금 농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취미는 기타와 축구입니다. 꼭 한국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스물둘에.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