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이승만 대통령 하야 망명으로 시작해, 재임 중 부하에게 시해당한 박정희 대통령, 퇴임 후 구속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후 자살에 이르기까지 비극의 연속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헌재의 기각 판결로 면했던 탄핵을 박근혜 대통령이 기어이 당해 새로운 불행의 기록을 추가했다. 대통령에게 더 이상 남아있을 불행이 무엇일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내란 중인 아프리카 나라 중에 한국 같은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에겐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는가. 자유민주주의로 나라의 기틀을 잡고 산업화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나라에서 그에 상응하는 지도력에 대한 존경이 없는가. 역대정권들은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이전 정부를 매장하기에 바빴다.
문재인 후보가 적폐청산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 탄핵만한 강력한 청산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권력의 속성은 휘두르는 것이고, 그 속성에 휘말리면 난폭해진다. 새 대통령은 그런 청산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위탁받은 권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거나, 평생 누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않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 되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일수록 특혜를 당연시한다. 권력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19대 대통령은 필연적으로 여소야대 상황의 대통령이다. 소통의 상대는 좁게는 여야 정당이고 넓게는 국민이다. 그런 겸허함으로 다가갈 때 상대도 맘을 열 것이다.
소통의 방법도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부르는 방식보다는 더러 포장마차나 설렁탕집에서 술 한 잔을 나누며 흉금을 펴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주위에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으면 뭔가 잘못 되어가는 징조임을 알아채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대통령집무실을 종합청사에 두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 후보도,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실 곁에다 짓겠다고 한 후보도 있었다. 공약을 했건 안 했건 간에 새 대통령은 그런 약속은 지켰으면 좋겠다. 비서들이 대통령을 면담하는데 세 곳의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 지금의 구중궁궐 청와대를 뜯어 고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받아 적게 하는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언론과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기자의 무례한 질문조차 대통령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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