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앞두고 독일 신문 메인뉴스에 올라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 현지 언론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페이지의 신문기사를 받았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온 것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인 여성 지휘자를 현지신문이 톱기사로 다룬 내용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지휘자 김은선입니다. 그녀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등의 공연 지휘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삽니다. 베를린 공연은 처음은 아니지만 남다른 감회에 젖게 할 것입니다. 처음 음악공부 하러 홀로 떠난 곳이 베를린이니까요. 연세대와 대학원에서 각각 작곡, 지휘를 전공하고 독일로 갔습니다. 베를린에서 다시 슈투트가르트 음대로 가서 지휘 전공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고점으로 졸업했습니다. 2008년 지저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 오페라 지휘자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며 유럽에 알려졌습니다. 그후 유럽의 전통무대에서 많은 오페라를 지휘했습니다.
현지신문이 전하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한국인 여성 지휘자 김은선은 세계를 누비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그녀는 곧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세 작품을 지휘할 것이다. 여성으로 지휘단에 서는 것은 대단히 드문데, 그녀는 잘 소화해내고 있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의 대학 지도교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교수는 그녀가 서울에서 작곡 공부를 할 때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가 언젠가 스승에게 자신을 유일한 제자로 받아들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교수는 ‘너의 겸손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겸손은 그녀에게 몸에 밴 듯하다. 지휘자로서 그녀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다. 각각 다른 나라에서 아침을 맞을 때가 많다. 지난주에는 ‘카르멘’ 연주를 위해 오슬로에 머물렀고 다시 베를린에 와야 했고 다시 왕복해야 했다. 지휘자로 살기 위해선 체력과 지구력이 요구된다. 연주를 위해 5시간 이상 서서 작업해야 할 때가 많다. 육체적으로도 아주 피곤하다.
그녀는 기껏해야 1년에 한번 고국을 방문한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부모님이 방문할 때도 있다. 그녀가 음악을 위해 서울을 홀로 떠난 것은 부모님에겐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가족 중 유일한 음악가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녀를 항상 지지해 주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나는 독일로 가고 싶었다. 독일은 서양음악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시아 여성이기에 더욱 힘들고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이 직종에서 젊은 여성이 생존하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음악가들은 나를 여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로 본다. 현재 내 나이 또래의 여성 지휘자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것은 점점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 ‘나는 언젠가는 다시 작곡을 하고 싶다.’ 그녀가 작곡을 그만두고 지휘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를 지휘자의 길로 서게 한 것은 지도교수였다. 작곡은 늦은 나이에도 할 수 있지만 지휘는 지금 육체적인 힘이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그녀의 꿈은 여전히 남아 있고 아직 늦지 않았다.”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을 소개한 독일 베를린 현지신문.
지난주 그녀만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전합니다. 이 오페라가 베르디(Verdi)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사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작을 쓴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에겐 오페라 내용과 비슷한 체험과 현실이 있었습니다. 뒤마가 자신의 체험소설 <동백꽃 여인>을 희곡으로 각색하여 5막의 연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852년 베르디는 파리에서 이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베르디는 아내와 사별한 후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문제입니다. 당시 사회가 죄악시하던 미혼모였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비난 속에 결혼하는 데 11년이 걸렸습니다. 각각 뒤마의 문학과 베르디의 음악이지만 당시 ‘마음의 과정’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최근 음악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감동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확장하자고 합니다. 그것은 음악이 ‘통합적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오페라는 다른 작품과 달리 당시 베르디의 마음 상태가 흠뻑 담겨 있음을 음악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iss). 길을 잃은 여인, 라 트라비아타의 실존인물입니다. 파리 몽마르트 생샤르르 묘역에는 그녀의 무덤이 있습니다. 17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무덤에는 지금도 희고 붉은 동백꽃이 자주 눈에 띈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소녀, 파리 사교계를 뒤흔들었던 거리의 여인, 독학으로 문학과 음악을 공부하고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력 덩어리. 뒤마 피스와는 잠시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순수한 사랑을 원했지만 결국 버려져 23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1853년 3월 6일, 이탈리아 베니스, 라 페니체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 2017년 5월 7일, 독일 베를린,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의 최근 공연까지. 길고 긴 ‘축배의 노래’는 이어졌습니다. 지휘자 김은선은 이 오페라를 어떻게 해석하고 마음에 담아냈을까요. 그녀만의 ‘라 트라비아타’는 보지 못하고 대신 인터뷰 기사를 읽습니다. 고국과 먼 곳이지만 한국인 지휘자로서 더 사랑받고 언젠가는 작곡의 꿈도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