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관련 뒤늦은 사과…‘선긋기’
황 회장의 퇴진설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정권 교체다. KT는 2002년 5월 민영화됐지만 정치적 외풍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역대 KT CEO는 대부분 정권이 바뀌면서 중도 퇴진했다. 이용경 전 사장은 2005년 6월 연임을 신청했다가 돌연 사퇴했으며 후임인 남중수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후인 2008년 11월 배임혐의로 구속됐다. 이석채 전 회장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11월 배임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사퇴했다.
KT 내·외부에서도 황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황 회장의 연임이 결정될 때 KT새노조와 시민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황 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하고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친분이 있던 이동수 전 KT 전무를 채용하는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부와 친한 인사라는 이미지가 짙다. KT새노조 관계자는 “황 회장뿐 아니라 황 회장의 연임을 결정한 이사회 구성원들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정권 초기라 두고 보고 있지만 황 회장이 물러날 뜻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를 상대로 황 회장의 수사를 요구하고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단체행동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황창규 KT 회장은 연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퇴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사진제공=KT
황 회장의 중도 퇴진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는 정경유착 같은 관행을 끊겠다고 천명해 오히려 KT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며 “황 회장은 더블루K의 연구용역 제안과 KT스키팀 창단을 거부하는 등 무조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만도 않았다”고 전했다.
황 회장은 최근 퇴진설을 의식했는지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긋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 3월 28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박 전 대통령의 KT스키팀 창단 제안은 상식 밖의 이야기”라며 “안 전 수석이 제시한 연구용역 사업과 중소기업의 기술은 수준 이하”라고 밝히는 등 박 전 대통령 정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에는 적극 협조할 뜻을 내비쳤다. 황 회장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 “4차 산업혁명 추진을 위해 5G 등 ICT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드린다”며 “새로운 정부와 통신산업 발전을 긴밀히 논의하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황 회장은 지난 4월 28일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코퍼레이트 데이’에 참석해 “어떤 이유에서건 주주와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친 점을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일관되고 투명한 경영활동을 위해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공감대를 확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의혹이 제기된 지 수개월 만에 사과문을 발표해 현 정부를 의식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재수사 의지를 보여 황창규 KT 회장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다. 일요신문 DB
일부에서는 황 회장이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지원을 통해 회장 자리를 보전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KT의 한 전직 임원은 “새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 연구개발 실무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데 KT의 투자방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황 회장은 정부가 커버하지 못하는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정부의 4차산업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단 황 회장의 퇴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재수사 의지를 보이면서 황 회장의 자리 보전은 장담할 수 없다. KT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KT는 황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내심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에 싸여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중도하차 없다” 내부에선 낙관…권오준 포스코 회장 닮은 듯 다른 처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퇴진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 포스코 CEO들도 KT CEO들과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면서 중도 퇴진했다. 2014년 3월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에 49억 원을 출연하고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게 포스코 광고계열사인 포레카를 넘겨주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여론이 좋지 않다. 하지만 포스코 내부 분위기가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황창규 KT 회장의 연임이 결정될 당시 노조에서 반대 성명서를 낸 것과 달리 권 회장이 연임할 때는 포스코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포스코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포스코 내부 분위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광양제철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은 용광로”라며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의 쟁쟁한 기술력을 물리치고 우리가 세계 1위를 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고 전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이 연임할 당시 CEO추천위원회에서 권 회장의 의혹을 살펴보고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에서 권 회장 퇴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