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마이웨이’ 회생길로 통할까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 대한 한 전문가의 평이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문 대표는 외적으로 보기에 신중하고 고뇌하는 햄릿형 인간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 결정을 내릴 때는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와 비슷하다. 정면승부 기질이다. 대선에서부터 최근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방식까지 이런 맥락을 계속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 대표의 위기는 지금까지의 역경에 비해 위험 수위가 매우 높다. 그것도 비리 혐의다. 검찰은 문 대표가 18대 비례대표 이한정 의원(구속기소)으로부터 6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진행했고, 그가 출석에 불응하자 체포 절차까지 착수했다. 문 대표의 정치적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 데다 무엇보다 창조한국당과 문 대표가 내세운 ‘깨끗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됐다.
창조한국당과 원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한 자유선진당으로서도 문 대표의 ‘운명’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과연 문 대표는 이번에도 특유의 ‘마이웨이’ 행보로 난국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
“고집불통 VS 소신대응”
문국현 대표의 마이웨이 방식은 그간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아 왔다.
대선에서 대다수 정치원로들과 진보진영 인사들이 통합민주당 정동영-무소속 문국현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지만 그는 끝까지 무소속 단일 출마를 고집했다. 심지어 캠프 내부에서 ‘정책 대연합, 가치 대연합’을 압박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대선 기간 동안 ‘후보 이명박-문국현’을 비교하며 ‘가짜경제 진짜경제’ 주장을 펼치고, 토론회에서 정동영 후보에 대해서도 비판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 대선 패배 후 약 3개월 만에 느닷없이 당시 최고 실세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게 총선 도전장을 내밀어 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주변에서는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통령의 최측근, 서울 강북지역(은평 을)의 탄탄한 터줏대감에게 도전해 이길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당시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 주변인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재오 후보는 낙후된 지역 발전 공약, 재래시장 상인들과의 스킨십 등으로 표를 확확 끌어오는데 문 후보는 노인들을 만나서도 ‘한반도대운하 심판’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얘기한다는 지적이었다. 보다 못해 중장년층 지지자들이 노골적으로 방법을 제안했다.
▲ 지난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가 검찰의 체포영장 발급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당시 선거과정을 접한 언론인들의 평가도 흥미로웠다. 곧잘 예상을 깨고 자기 스타일대로만 움직이더라는 얘기였다. 문국현 캠프를 취재했던 주요 일간지의 한 기자는 “11시쯤 기자간담회를 열어서 갔더니 정말 브리핑과 질의응답만 하고 끝내더라”며 “점심시간 직후에 간담회가 끝났으므로 문 후보가 참석자들과 도시락이라도 함께 먹을 줄 알았는데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만 들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문 후보는 간발의 차이로 4·9 총선에서 승리, 전국적 관심을 모으며 부활에 성공했다. 한쪽에서는 ‘고집불통’이라는 비난이, 다른 한편에서는 ‘소신대응의 승리’라는 환호가 나왔다.
‘이재오 구하기’ 반박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문 후보의 행보도 독특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검찰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 와중에도 중소기업 토론회를 주최했다.
검찰에서 본격적인 체포절차를 개시한 지난 21일의 일이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 가지를 주장했다. 검찰이 이한정 의원(구속기소)의 허위진술을 인용해 과잉수사를 하고 있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 복귀를 위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경제해법이 한반도대운하를 살리고 토목건설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것인데, 걸림돌이 되는 문국현을 제거하려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처럼 급박한 상황이 전개된 바로 이날 그는 ‘문국현의 대한민국 재창조 프로젝트’ 연속 토론회도 진행했다. 현 정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뉴 프런티어 운동’을 강력히 주장했고 전문가 의견까지 청취했다.
이런 모습은 위기에 봉착한 다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18대 국회 처음으로 체포동의안까지 넘어온 상황인데 정작 문 대표는 정책토론회까지 하면서 여유만만하다”며 “절대 체포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여유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존 정치인과는 사뭇 다른 ‘문국현식 위기대응 스타일’은 과연 어떤 내력에서 나온 것일까. 기업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대건설 이명박 사장’ 못지않게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은 독특한 신화를 쌓아왔다. 특히 그를 급성장시킨 것은 당시로서는 ‘엉뚱한’ 환경운동 밀어붙이기였다.
1983년 당시 유한킴벌리 마케팅 부장이던 문국현 대표는 “광고비를 줄여 환경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가 회사 내부에서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정신병자 취급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밀어붙여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신화를 만들었고 이는 곧 문국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환경 마케팅’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대선에 출마해서도 이를 차용해 ‘우리 정치 푸르게 푸르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그를 둘러싼 또 다른 신화도 소신과 연관돼 있다. 자신의 책 <문국현의 희망편지-사람이 희망이다>에서 그는 2004년 난지도 조폭과의 담판승부(?) 일화를 소개했다. 대통령 직속 ‘사람입국 신경쟁력 위원회’ 워크숍을 통해 난지도 생태공원 조성을 추진하던 중 업자들에게 끌려간 사연이다.
그는 이때 조폭들에게 “나는 환경운동을 목을 내걸고 한다. 환경운동이 간단한 것 같지만 목을 내걸지 않으면 못한다”는 신념을 설파했고 조폭들은 그를 무사히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문국현 대표의 한 측근은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공사현장에서 금고 지키려 목숨을 걸어 유명해졌고, 문국현 대표는 생태공원 지키려 목을 내놓으면서 영혼이 있는 경제인으로 부상했다”며 “현상은 다르지만 ‘목숨을 내놓아야 산다’ ‘위기는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기질을 갖게 된 과정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즉 문 대표는 주변의 조언보다는 본인의 직관을 믿는 경향이 강하고, 이번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압박을 할 테면 해봐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어쨌든 이번 수사 결과는 문 대표의 정치운명을 좌우할 전망이다. 그가 주장해온 깨끗한 정치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도하게 부풀려진 허상이었는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문 대표는 돈키호테식 위기대응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면 된서리를 맞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