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준법라인 인사 ‘다 쓴 칼은 칼집에…’
최근 삼성생명의 임원인사가 자살보험금 징계에 대한 문책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 서초사옥. 일요신문DB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중순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며 줄다리기를 벌였던 삼성·한화·교보생명에 대한 제재를 최종 결정됐다. 지난 17일 열린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는 교보생명에 1개월 영업 일부 정지를 의결했고, 삼성·한화생명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장 전결로 기관경고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은 재해사망을 담보하는 보장성 보험을 한 달간 판매하지 못하며, 3년 동안 인수·합병(M&A) 같은 새 사업을 벌일 수 없다. 삼성과 한화생명은 1년간 새 사업에 진출하지 못한다.
과징금 부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도 결정됐다. 삼성생명은 8억 9400만 원, 교보생명은 4억 2800만 원, 한화생명은 3억 950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또 김창수 삼성생명 대표이사,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이사,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는 모두 주의적 경고 징계를 받았다. CEO가 문책경고를 받으면 연임이나 다른 금융회사로 재취업을 할 수 없지만 주의적 경고 이하 제재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자살보험금 사태는 2001년 한 보험사가 실수로 자살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주는 약관을 만들어 특약 상품을 판 이후 다른 생보사들이 이를 베껴 비슷한 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재해사망 보험금은 일반 사망보다 2배 이상 많다. 보험사들은 약관이 잘못된 보험상품을 2001~2010년 표준약관 개정 전까지 9년간 판매했다. 이들 생보사는 고객이 문제를 제기하면 약관 오류라며 재해사망보험금이 아닌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했다. 이후 금융당국이 제재를 예고하자 뒤늦게 지급했다.
금감원은 2014년 ING생명을 시작으로 현장검사를 벌인 뒤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보험사들에 통보했다. 이에 불복한 보험사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약관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자 금감원은 작년 11월 중징계를 예고했다. 버티던 삼성·한화·교보생명은 올해 1월 이후 뒤늦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
3년 가까이 끌어온 자살보험금 논란은 당국의 이번 조치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후유증이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사건에 관계된 보험사는 물론 금융당국에서도 인사조치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제재조치가 결정된 지 이틀 만인 지난 19일 삼성생명은 임원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금융권은 삼성생명이 사실상 자살보험금 문제에 관한 문책 인사를 실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삼성생명의 법률위원을 맡았던 준법경영실장이 물러나고 법무팀장 겸 준법감시인을 맡던 정종욱 전무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또 개인영업본부장 등 3명의 임원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목적에서 ‘소비자보호팀’을 신설해 임원이 이끌도록 했다.
이밖에 손관설 상무(기획실 담당임원), 손권희 상무(강북지역사업부 담당임원), 주영수 상무(신채널사업부장), 최승훈 상무(GA사업부 담당임원), 최지훈 상무(융자사업부 담당임원), 하지원 상무(재무심사팀장) 등이 승진했다.
금융권은 삼성생명이 자살보험금 중징계를 받은 것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한 것으로 해석한다. 법률 공방에서 밀린 삼성생명이 이번 임원 인사를 통해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삼성생명 측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임원인사일 뿐 자살보험금 사건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금융감독원은 자살보험금 사건 지휘한 보험준법검사국장을 전격 교체했다. 자살보험금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출구전략’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종현 기자
‘승자(?)’에 해당하는 금융감독당국에서도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자살보험금 사건을 다뤘던 직계부서인 금융감독원 ‘준법검사 라인’에 변화가 생긴 것. 금감원은 최근 보험준법검사국장에 김종민 대구지원(경북도 파견) 국장을 전격 선임했다. 금감원 준법라인의 변화는 지난해 ‘은행·보험·금융투자’ 3곳의 준법검사국이 신설된 지 약 15개월 만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검사 담당 조직을 건전성담당국과 준법성검사국으로 분리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준법검사국은 건전성 검사와 별도로 금융회사의 법규위반 사항을 단속한다. 특히 중대한 사안이나 반복적인 법률 위반을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진웅섭 금감원장의 개혁의지를 현장에서 수행하는 핵심부서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준법검사국은 다수의 주요 현안을 처리하며 금융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살보험금’, ‘사기 육류담보대출’ 사태 등이 보험준법검사국이 다뤘던 사안들이다. 특히 자살보험금의 경우 영업정지나 대표이사 중징계 등 초강수를 내세우는 강공드라이브를 편 끝에 생명보험 빅3를 모두 굴복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초 대규모 세대교체 인사에서도 유임시켰던 준법검사국장이 교체됐다. 연초 금감원은 1962년 6월 이전 출생한 국·실장들 중 임원 승진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직 해임했는데, 이 와중에도 준법검사국장은 유임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이번 준법검사국장 교체가 자살보험금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금감원의 ‘출구전략’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감독당국도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 사건을 순리대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도 얻었고 영이 서는 모습도 보인 만큼 금감원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시점이 되지 않았겠느냐”면서 “더구나 새 정부도 출범한 만큼 이제는 갈등을 봉합하고 감독당국다운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