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된 상태서 이용당해 100억대 바쳐…교주 음반 팔기 위해 길거리 공연도
‘토시’라 불리던 데야마 토시미츠.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화려한 분장과 복장을 내세우는 이른바 ‘비주얼 케이’의 붐을 불러일으킨 엑스재팬은 일본 록의 역사에 확실한 분기점을 찍은 밴드가 되었다. 그런데 1997년, 밴드는 갑자기 해체를 선언한다. 이유는 토시의 탈퇴. 그들은 12월 31일 도쿄 돔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가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7년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엑스재팬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사실 토시는 가족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큰형인 데야마 켄이치는 동생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금전 관계를 비롯한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한편 그는 1992년부터 솔로 활동을 병행했는데, 1993년엔 록 뮤지컬 <햄릿>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때 오필리아 역을 맡은 가수가 있었다. 토시보다 네 살 어린, 24세의 모리타니 카오리였다. 그들은 가까이 지내기 시작해 1996년 2월에 결혼했으며, 다음 해 토시는 엑스재팬을 탈퇴한다. 이 과정에서 빠져선 안 될 인물이 바로 쿠라부치 토루, 흔히 ‘마사야’라고 불리던 인물이다.
모리타니 카오리는 토시와 사귀면서 “너의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진정한 내면을 보고 싶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자신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가족들 때문에 지쳐 있었던 토시에게 카오리의 이런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이때 카오리는 토시를 데리고 콘서트에 갔다. 말이 콘서트지, 작은 건물 지하실 같은 곳에서 이뤄진 종교 집회 같은 모임이었다. 이때 등장한 (아무래도 ‘메시아’에서 온 이름인 듯한) 마사야는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잔잔한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마치 광신도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리타니 카오리
엑스재팬 탈퇴도 마사야와 아내 카오리의 강권 때문이었고, 토시는 ‘홈 오브 하트’의 전도사가 되어 일본 전역을 누비며 3000번에 달하는 투어 콘서트를 열었다. 말이 콘서트지, 음식점이나 시장 같은 곳에서 버스킹처럼 이뤄지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마사야가 만든 음반을 파는 것이었다. 한때 아이돌이었던 토시는 자신의 유명세를 그렇게 허무하게 탕진했고, 세뇌당한 상태에서 이용당했다. ‘홈 오브 하트’에 소속되면서 이전 소속사에게 거액을 물어줘야 했다.
마사야로 불린 쿠라부치 토루
한편 마사야는 더 이상 토시에게 뽑아먹을 것이 없자 다시 엑스재팬 멤버가 되라고 권유했다. 간단히 말하면 돈을 벌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오랜 친구인 요시키에게 갔고,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요시키는 토시를 진심으로 감화시켜 변화시켰다. 드디어 토시는 마사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삼엄한 감시를 피해 요시키와 함께하며 2007년에 다시 엑스재팬의 리더가 되었다.
결국 토시는 2010년에 파산 선고로 금전적 부담을 벗었고, 법정 분쟁이 있었으나 요시키의 도움으로 승소했다. 카오리와도 이혼했는데, 사실 그녀는 토시에게 접근하기 전부터 이미 마사야의 여러 부인 중 한 명이었다. 현재 엑스재팬은 예전 못지않은 열정으로 활동 중이다. 예전처럼 날카로운 가창력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토시 역시 세월의 풍상을 겪은 사연 많은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