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OB ‘벤클’로 골절부터 형사입건까지…김응용 감독은 퇴장 7차례로 ‘최다’
상벌위원회도 열렸다. KBO는 모든 벤치클리어링을 놓고 상벌위원회를 열지는 않는다. 해당 경기 퇴장이 이미 징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위가 높았다고 생각했을 때만 추가 징계를 내린다. 윤성환과 비야누에바는 나란히 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고, 정현석은 5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페트릭은 출전 정지 없이 제재금 200만 원을 내게 됐다. 또 추후 영상 자료 분석을 통해 한화 선수들을 가격한 사실이 밝혀진 삼성 김재걸 코치와 강봉규 코치에게도 출장 정지 5경기와 300만 원 제재금을 부과했다. 양쪽 구단에게도 벌금 500만 원을 물렸다. 근래 보기 드문 수위의 난투극이 펼쳐진 터라 야구계가 갑론을박으로 시끌시끌했다.
# 가장 많은 퇴장을 부르는 벤치클리어링
‘퇴장’은 경기 도중 물의를 일으켰다고 판단된 구단 구성원에게 심판의 재량으로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의 페널티다. 감독이나 선수, 코치, 트레이너가 퇴장명령을 받으면 곧바로 그라운드를 떠나야 한다. 이후 경기의 나머지 부분에 관여할 수 없다. 감독은 경기 운영에 손을 댈 수 없고, 트레이너는 부상 선수를 관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경기에서 빠진 사람은 더그아웃 출입이 금지된다. 라커룸 안으로 이동하거나 유니폼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고 소속팀 벤치에서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한화 선수들과 삼성 선수들이 몸 맞는 공 시비로 벤치클리어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많은 퇴장을 부르는 사건은 역시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한 몸싸움이다. 지금까지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한 KBO 징계는 총 42건 나왔다. 난투극이 원인이 된 최초의 퇴장 선수는 1982년 8월 17일 잠실구장에서 맞붙은 해태 김종윤과 MBC 김용운이었다. 이들은 퇴장 이후 상벌위원회에서 각각 10만 원씩 벌금을 부과 받았다.
지금까지 벤치클리어링 퇴장으로 부과된 최고 액수 벌금은 500만 원이다. 총 두 번 나왔다. 2004년 8월 5일 SK 틸슨 브리또가 벤치클리어링 도중 배트를 들고 삼성 더그아웃에 난입했다가 500만 원 벌금을 내야 했다. 2007년 5월 4일에는 LG 봉중근이 두산 안경현에게 빈볼성 공을 던진 뒤 마운드로 달려든 안경현을 넘어뜨려 역시 퇴장 후 500만 원 벌금 징계를 받았다.
그 다음으로 많은 금액은 300만 원이다. 2001년 9월 18일 롯데 펠릭스 호세가 1루에서 마운드로 달려와 삼성 배영수의 얼굴을 가격했다가 정규시즌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벌금 300만 원을 내야 했다. 지난해 6월 21일 LG 류제국과 SK 김강민도 문학구장에서 몸에 맞는 공 때문에 실제 주먹다짐을 벌이다 나란히 퇴장당했다. 각각 제재금 300만 원과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120시간 추가 징계를 받았다.
최악의 사태를 낳은 역대 최대 규모 벤치클리어링은 1990년 6월 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OB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벌어졌다. OB 투수 김진규가 삼성 강기웅 타석에서 타자 머리 쪽으로 초구를 던졌다. 강기웅이 OB 포수 조범현과 잠시 언쟁을 벌이다 다시 타석에 섰지만, 2구째는 강기웅의 옆구리로 날아와서 맞았다. 안 그래도 삼성과 OB는 불과 일주일 전 열렸던 대구 3연전에서 악연을 맺은 뒤였다. OB가 5월 31일과 6월 1일 경기에서 각각 3-20과 1-9로 대패해 기분이 안 좋았던 데다, 연타석 홈런을 친 강기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큰 세리머니를 하다 미운 털이 박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결국 터질 게 터졌고, 강기웅이 마운드로 달려나가 김진규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곧 양 팀 선수들이 다 뛰어나와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감정이 격해져 배트를 들고 달려온 선수도 선수가 있었다. 난투극은 5분 정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삼성 박용준은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싸움을 말리던 주심 김동앙 씨는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다. 이 경기에서 퇴장당한 선수는 무려 여섯 명. 삼성에선 강기웅 박정환 김종갑, OB에선 김진규 조범현 김태형이 각각 퇴장 선언을 받았다. 강기웅와 박용준에게 실제로 부상을 입힌 OB 이복근은 아예 형사 입건됐다. 갈비뼈를 다친 김동앙 주심이 병원으로 후송돼 경기도 무려 22분간 중단됐다. 결국 김 주심이 경기장에 복귀하지 못한 채, 남은 경기는 3심 체제로 간신히 치러졌다.
이튿날 열린 상벌위원회에서는 벤치클리어링의 원인을 제공한 강기웅과 김진규에게 나란히 벌금 100만 원과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다른 퇴장 선수 4명에게도 벌금 30만 원씩을 물렸다.
# 감독 퇴장은 누가 어떻게 많이 당했나
심판 판정에 대한 불복종도 벤치클리어링과 쌍벽을 이루는 퇴장 원인이다. 특히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기 전에는 감독들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명령을 받는 사례가 가끔 나왔다. 물론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후폭풍을 우려한 감독들이 딱 ‘퇴장당하지 않을 수준’까지만 항의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실제로 1989년부터 1996년까지는 8년 연속 감독 퇴장이 단 한 건도 없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에도 역시 경기 도중 감독 퇴장은 나오지 않았다.
역대 가장 많이 퇴장 당한 김응용 전 한화 감독
그러나 1985년에는 해태 김응용, OB 김성근, 롯데 강병철 감독까지 세 감독이 한 시즌 동안 총 세 차례 퇴장으로 인한 징계를 받았다. 2011년에도 KIA 선동열 감독, 한화 한대화 감독, 넥센 김시진 감독이 심판 판정 문제로 퇴장을 당해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감독이 퇴장당한 해로 공동 기록됐다.
역대 가장 많이 퇴장 당한 감독은 역시 통산 최다승 사령탑인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이다. 총 일곱 차례 퇴장 선언을 당했다. 해태 감독 시절이던 1983년 5월 12일 삼미전에서 심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해 한국 프로야구 사상 1호 감독 퇴장 기록을 남겼다. 이듬해 역대 2호 기록도 김 감독이 차지했다.
두 번째로 많이 퇴장한 감독 역시 통산 최다승 2위 감독이다. 최근 한화 지휘봉을 내려놓은 김성근 전 감독이 총 세 차례 퇴장당했다. OB 감독 시절이던 1985년에 역대 3호 퇴장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고, 쌍방울 감독 시절이던 1998년과 1999년에도 한 차례씩 퇴장명령을 받았다. 무엇보다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심판판정에 항의하면서 선수단 철수를 명령하다 퇴장당해 전무후무한 포스트시즌 감독 퇴장 사례도 남겼다.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닌 만큼 감독들의 퇴장 사례는 많은 화제를 남긴다. 2011년 한화 한대화 감독은 심판에게 항의하면서 내뱉은 비속어가 중계 화면에 입모양으로 고스란히 잡히면서 오히려 팬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예끼’로 시작하는 한 감독 특유의 말투가 대전구장에서 응원가로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다. KIA 김기태 감독은 2015년 상대 주자의 스리 피트 라인 아웃을 주장하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직접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몸으로 거리를 표현하는 모습으로 이목을 끌었다. 스피드업 규정에 명시된 제한시간 5분을 넘겨 심판과 대치하다 결국 퇴장 선언을 당한 뒤에는 자신의 모자를 2루 옆에 남겨놓고 돌아와 홈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눕기태’라는 유명한 별명의 시초가 된 장면이다.
물론 ‘퇴장’은 감독이나 선수가 해당 경기에 관여할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무거운 벌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실 야구에서는 벤치클리어링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항의나 퇴장도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굳이 권장할 만한 장면은 아니지만,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거나 선수들의 투지를 끌어올리는 데는 긍정적인 효과도 미친다는 얘기다. 가장 많은 승리를 올린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이 가장 많은 퇴장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산 2504승으로 빅리그 역대 감독 최다승 4위에 올라 있는 보비 콕스 감독이 무려 158차례나 퇴장을 당해 역대 최다 감독 퇴장 1위에 올라 있다. 2010년까지 29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한 연평균(정규 시즌) 5.4회씩 퇴장을 당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세 차례 퇴장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여전히 명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콕스 감독은 “선수가 퇴장당하는 것보다 내가 퇴장당하는 것이 차라리 경기에 덜 영향을 미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소속팀 선수가 심판에게 항의하기 시작하면 차라리 자신이 나서 대신 화를 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명장으로 꼽히는 얼 위버 감독도 볼티모어 시절 시범경기에서 심판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항의하다 퇴장당한 적이 있다. 어이없어 하며 이유를 묻는 심판에게 위버 감독은 “이것도 내게는 시즌 준비 중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대통령 행사로 구단 버스 도로에 갇혀 몰수패 당할 뻔… ‘몰수게임’은 말하자면 한 팀 선수단 전체가 경기에서 ‘퇴장’당하는 상황이다. 한 팀이 규칙을 중대하게 위반했을 때, 주심이 경기를 종료하고 잘못이 없는 팀에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6회 이후 앞서고 있던 팀이 승리하게 되면 경기 종료 시점 점수가 그대로 적용되고, 5회 이전에 경기가 끝나거나 지고 있던 팀이 이기게 되면 무조건 최종 스코어가 9-0으로 처리된다. 몰수게임이 선언되는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주심이 “플레이”를 선언한 뒤 5분이 지나도 그라운드에 나오지 않거나 경기 지연 혹은 단축을 위해 명백한 술책을 썼을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주심이 경기 일시 정지나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는데도 경기 속행을 거부했을 경우, 일시 정지 후 주심이 “플레이”를 선언하고 나서 1분 안에 경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경우, 심판이 경고를 했음에도 고의로 집요하게 반칙 행위를 했을 경우 등이 해당된다. 심판에게 퇴장 명령을 받은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을 일정 시간 이상 거부하는 것도 몰수 게임 사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쪽 팀이 경기장에 9명의 선수를 내보내지 못하거나 경기 시작 전까지 야구장에 도착하지 못했을 때도 몰수게임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KIA는 2015년 4월 대구구장 낮 경기를 앞두고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야구장에서 15분 거리인 원정 숙소를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나섰다가 도로에 갇혀 버렸다. 하필이면 경기 당일 대구에서 한 국제 행사가 개막했고, 하필이면 그 시간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이 이동 중이라 대구 시내 도로 일부가 통제됐다. 사전에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한 KIA는 40분 넘게 버스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현역 시절 마운드에서 ‘싸움닭’으로 통했던 조계현 KIA 수석코치가 해결사로 나서 경찰을 설득했고, 경찰이 40분 만에 조 코치가 제안한 대로 샛길을 열어주면서 선수단은 경기 전 무사히 야구장에 도착했다. 사실 몰수게임은 현대 프로야구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릴 정도의 사유가 아니라면, 주심이 경기를 종료시키고 승패를 결정하는 상황 자체를 구단과 팬들이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는 1902년 7월 17일 뉴욕 자이언츠가 경기 개시 시간까지 선수 9명을 다 입장시키지 못해 몰수게임 패배를 당한 뒤 100년 넘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프로야구 초창기에만 두 차례 몰수게임이 선언됐다. 첫 번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8월 26일 대구 삼성-MBC 전이었다. 삼성 1루주자 배대웅이 무리한 슬라이딩을 하다 MBC 2루수 김인식과 위험하게 충돌했고, 화가 난 김인식이 배대웅의 따귀를 때리면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이때 주심이 김인식에게만 퇴장을 선언하자 MBC 백인천 감독이 선수들을 모두 더그아웃으로 불러 들였다. 판정에 불복하며 25분을 버텼다. 결국 주심은 삼성의 승리를 선언했다. 두 번째는 1985년 7월 16일 잠실 MBC-OB 전에서 나왔다. OB 김성근 감독이 상대 팀 주자의 ‘스리 피트 라인’ 위반을 지적하면서 득점이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선수단 철수를 지시했다. 주심은 5분이 지난 뒤 김 감독의 퇴장을 선언했고, 그 후에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않자 결국 몰수게임으로 판정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몰수게임을 볼 수 없게 됐다. 간혹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방법으로 강하게 항의하는 감독들도 나왔지만, 이때도 선수 한 명은 반드시 그라운드에 남겨 놓는 게 관례가 됐다. ‘선수단 전원 철수’라는 몰수게임 조건을 피하기 위해서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