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한 성생활 탓 에이즈…혈세 낭비” 과장된 일반화 아닌가요
그러나 이런 흐름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이제까지 겪었던 것 중 가장 거대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꾸준히 동성애를 반대해 왔던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는 6월 대규모 동성애 반대 집회를 진행해 동성애자들을 포함한 성소수자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에 맞불을 놓을 예정이다. 최근 대형 교회 집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일명 ‘에이즈 지라시’도 동성애 혐오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동성애에 다소 온정적이었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면서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된다. 이에 <일요신문>이 오는 7월 15일로 예정된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 앞서 성소수자와 관련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떠돌고 있는 지라시들의 진실과 거짓을 알아봤다.
스마트폰 메신저, SNS 등 인터넷을 통해 유포됐던 에이즈 관련 찌라시의 일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내 세금이 에이즈 동성애 환자들에게?”
“동성애로 말미암아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에게 죽을 때까지 월 600만 원씩 지원되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가 내는 세금입니다.”
최근 대형교회 소속 교인들의 단체 카톡방이나 SNS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의 글이 확산 중이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측의 동성애 반대 주장과 맞물려 힘을 얻기 시작한 지라시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에 대한 최근 비난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기도 하다.
과연 이 지라시는 팩트일까? “에이즈 환자들에게 월 600만 원씩 지급한다” “에이즈는 문란한 동성애자들이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다” 등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팩트가 맞다. 국내의 경우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HIV/에이즈 감염인들에게 진료비와 약값, 향후 치료비 등 전액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값의 경우 90%는 건강보험재정에서, 나머지 10%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각각 5%씩 지원한다. 지난해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질병관리본부 측이 발표한 에이즈 환자 진료비는 진찰료, 입원료, 검사비 등을 포함해 총 810억 5100만여 원으로 나타났다.
희귀성 난치질환을 앓고 있는 국민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한다는 것은 비판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지라시에 적힌 대로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생활로 생기는 질병 때문에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정서도 커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성소수자 측은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의 항문성교만으로 감염되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와 에이즈 발병 상관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고 줄곧 반박해온 바 있다.
#여성혐오 용어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만들었다?
최근 성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의견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동안 성소수자들에게 지지를 표현해 왔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거세기 때문이다. 20~30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들을 비판하는 글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남성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소수자 커뮤니티 I나 10~20대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인 S에서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주로 여성의 가슴을 조롱하는 ‘뽈록이’나 여성에 대해 ‘갈보’라는 단어를 뒤집어 ‘보갈’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 같은 용어는 남성 동성애자들만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성소수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한 트위터리안
게다가 최근에는 성소수자가 아닌 페미니스트들과 성소수자들도 팽팽한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챙길 테니 성소수자들도 알아서 제 밥그릇을 챙기라”는 입장의 성소수자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에게 성소수자들이 “인권을 논하는 문제에 네것 내것을 따지다간 그 누구의 인권도 존중되지 않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다만 여혐 단어들을 일부 성소수자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 전체에 대한 비난 프레임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군 동성애 색출’ A 대위가 동영상 유포자다?
지난 4월 수면 위로 떠올랐던 ‘군 동성애 병사 색출’ 사건은 군 법원 특성상 사건 관련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서 수많은 루머를 낳았다. 이렇게 정보가 한정된 상태에서 군 인권센터 및 성소수자 단체에서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과 수사를 진행한 육군본부의 주장이 상이해 1심 선고가 이뤄진 현재까지 루머와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특히 사건의 중심이 된 일명 ‘A 대위’와 관련해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반에는 A 대위가 현역 군인들과 동성 성관계를 가졌고, 이를 촬영해 트위터 등 SNS 등지에 유포시켰다는 루머가 퍼졌다. 동영상 속 상대 군인이 성관계 중 자신의 관등성명을 댔기 때문에 군에서 대대적으로 ‘동성애 병사’를 색출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
이 같은 루머는 팩트일까? <일요신문> 확인 결과 트위터에 실제 한국 남성들 간의 성관계 영상을 찍어 판매하고 있는 계정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판매가 종료돼 비공개로 전환된 영상 가운데 현역 군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있었고, 이 영상을 토대로 육군본부가 군내 동성애 병사를 40~50명가량 색출해낸 것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A 대위가 동영상 속 등장인물이라거나, 이를 유포한 인물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육군본부가 영상 속 병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해당 병사가 이용한 동성애자용 스마트폰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색출해낸 장병 가운데 한 명이 A 대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영상을 판매한 트위터 계정은 6월 1일 기준으로 이용이 정지된 상태로 확인됐으며, 이와 관련한 수사는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A 대위는 “사적 공간이 아닌 부대 내 독신자 숙소에서 다른 동성과 성관계를 하고, 일과 시간 동안 병영 내에서 하급자를 수차례 추행하는 등 군 기강 확립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군 인권센터 및 성소수자 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A 대위의 변호를 지원할 방침을 밝혔지만 A 대위는 항소를 포기했다. 다만 군 인권센터 측은 사건의 특수성과 A 대위의 신변을 고려해 그와 관련한 루머 유포나 언론 오보 등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할 것을 밝힌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