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잔존 세력 연계 가능성 ‘솔솔’...자숙 중이던 김원홍 진압 후 공직 복귀
조선중앙TV가 28일 새로 공개한 ‘군종 합동 타격시위’ 영상에서 한때 ‘해임설’이 나왔던 김원홍 국가보위상의 모습이 포착됐다. 김원홍(붉은 원)이 관람석에 서서 열심히 박수를 치는 모습. 앞서 김원홍은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주석단에 등장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연합뉴스
필자가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3군단 내부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몇 개월 전의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면밀한 크로스 체킹이 필요했다. 그 과정을 통해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은 2017년 1월경 발생했다. 정권의 전복을 목적으로 쿠데타가 모의됐던 곳은 3군단이다. 3군단은 평양의 갑문 역할을 하는 평안남도 남포시에 주둔하는 부대다. 주로 고사포를 주 병력으로 하는 포병 부대로서 평양 외곽방어의 핵심으로 알려졌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평양 입장에서 위험한 부대기도 하다. 그 포대 방향을 반대로 튼다면 평양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앞서의 논의가 진행됐던 것은 이러한 3군단 본연의 성격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이를 모의한 세력은 3군단 사단장 급 인사다. 핵심은 북한 ‘강건종합군관학교(강건학교)’ 출신 동기들이다. 강건학교는 우리의 육군사관학교와 매우 유사한 위치에 있다. 초급 지휘관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 사관학교는 북한 군부 내 엘리트 군관들의 주요 출신 학교라 보면 된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 이 모의에 참여한 이들은 총 17명이다. 이 중 3군단 소속 사람들이 8명이다. 이 멤버들은 사단장, 부사단장, 사단 참모장과 함께 말단인 연대장 급 인사도 포함된다.
이 모의를 주도한 인물은 3군단 소속 50대 젊은 사단장인 강 아무개 소장이다. 강 소장은 강건학교 시절 자신의 기수를 대표하는 ‘대대장’을 맡았다. 학교 졸업 후에도 그는 자신의 기수에서 자의적·타의적으로 ‘리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강 소장은 이미 7~8년 전부터 자신의 동기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별도의 ‘소모임’을 조직해 운영했다. 애초 그 소모임 성격이 반체제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3대 세습 이후 그 모임의 성격이 점차 반체제 성향으로 흘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1월 신정을 즈음하여 이미 구체적인 거사 계획과 일정까지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소모임 내부에서 밀고자가 발생했다. 1월 신정 직후 3군단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은 이 밀고자에 의해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서에 보고됐다. 당과 김정은 입장에선 상당히 곤혹스럽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또한 아주 비밀리에 강 소장을 비롯한 쿠데타 모의자들을 제압하고 축출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부정적인 파장이 일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일은 진행됐다.
김정은은 고민 끝에 이 작업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에게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알려졌다시피 김 보위상은 지난해 말 보위성 내부 검열에 의해 해임(혹은 직무정지)됐다. 당연히 3군단 사건 당시에는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김정은은 자숙 중인 김원홍을 다시 불렀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김원홍 보위상은 국가안전보위성(과거 국가안전보위부)에 입성하기 전, 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역임했다. 조직부국장은 군의 당 조직을 관할하고 집행하는 인민군 당위원회의 집행위원회(당위원회의 의사결정을 전담)의 제2비서를 겸직한다. 이 시절 김원홍은 군 당위원회 집행위원회의 제2비서 자격으로 직접 3군단을 관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김정은 주변 인물 중 3군단 내부를 속속들이 아는 인물이 김원홍이었던 셈이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2월 25일 고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일(2월 24일)을 맞아 제3군단 지휘부를 시찰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3군단을 사찰하는 김정은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자숙 중이었던 김원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원홍은 보위성 산하 기동타격부대와 호위사령부 974부대(일명 친위대) 병력을 차출 받아 직접 3군단 쿠데타 모의자들을 진압했다. 1월 중순경 포착해 말경 작업을 완료했다.
앞서의 보위성 기동타격부대는 3대 세습 시기에 새롭게 조직된 부대다. 즉 이번 3군단 쿠데타 모의와 같이 체제 불안으로 인한 동요가 있을 시 사전 제압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부대다. 필자는 2015년 10월 제1224호 연재를 통해 이 부대를 직접 거론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들을 염려해 보위성 기동타격부대를 조직한 아버지 김정일의 혜안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원홍 보위상이 4월 15일 태양절 공식무대에 전격 복귀한 것은 결국 이 같은 공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압된 모의자들은 아직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 당국은 아직 이 사건과 관련해선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하고 있다. 사건 전말의 공개 여부 및 모의자들의 처분 시기도 아직 미정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필자가 이 정보를 입수하면서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왜 ‘쿠데타 모의’를 한 부대가 하필이면 3군단이냐는 것이다. 3군단은 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친형인 장성우가 군단장으로 있었던 부대다. 장성택이 숙청됐을 당시에도 ‘장성택 세력이 깊게 연계돼 있는 부대’라는 소문이 많았던 곳이다.
아직 확인이 더 필요하겠지만, 3군단 쿠데타 모의와 장성택 잔존 세력의 연계 가능성도 꼭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