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쓸이식 수사 ‘하나만 걸려라’
현재 검찰이 벌이는 수사는 한마디로 전 방위적이다. 특수수사의 주력군인 대검 중수부는 강원랜드 비자금 조성 및 정치권 로비 의혹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또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3남인 홍걸 씨와 연루돼 물의를 빚었던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를 구속해 주가조작 및 정치권 로비 등의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중수부의 이 수사는 참여정부 실세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조영주 전 KTF 사장의 납품업체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돈이 100억 원대에 이르며 이 자금의 일부가 정치권에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자금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의 고교선배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자신의 동생에 대한 인사청탁을 했다는 단서를 잡고 이 전 수석에 대한 소환도 검토 중이다.
서울서부지검은 프라임산업 백종헌 회장의 둘째동생인 백종진 벤처산업협회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이 회사가 김대중 정부는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동아건설을 인수하는 등 사세를 키워온 만큼 각 정권의 실세가 타깃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출국금지하고 곧 탈세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태세다.
검찰이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자 사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압수수색을 한 기업이 20여 곳이 넘는 데다 조 전 KTF 사장의 경우 전광석화처럼 압수수색 후 사흘 만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세청은 현재 1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세무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KTF 다음 차례는 P 사, L 사라는 식의 설들이 정치권과 재계에서 뒤숭숭하게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9월 25일 범정부적으로 공직자 기업인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경찰 금감원 국세청 등으로 꾸려진 합동수사 태스크포스팀을 대검에 설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서슬 퍼런 전 방위 수사에도 불구, 정작 검찰이 별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 일각에서조차 ‘이러다 체면을 구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검찰은 이미 지난 5월 접대비 과다 지출 의혹 등으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를 압수수색을 하며 수사를 벌였지만 거래소 임직원들의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와 한국석유공사도 압수수색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서 벌이고 있는 부산자원 사건의 경우엔 2006년 무혐의 처분됐었던 사건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압수수색에 비해 성과가 없어 사실 걱정”이라며 “정치인 수사가 진척이 없을 경우 검찰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사정에도 불구, 참여정부 등 구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 성과가 미미할 경우 수사의 역풍이 검찰로 향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검찰 내부에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조 전 KTF 사장 수사에서 구 정권 실세 인사의 이름이 나온 것에 적지 않게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수사대상에 오른 이 전 수석이 동생의 취직자리를 부탁한 것은 업무와 관련되지 않아 직권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적 해석이 있어 현재 알려진 혐의만으로는 사법처리가 어렵다는 부정적인 관측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 정반대로 검찰이 사실 전 방위 수사를 상당 부분 진척시켰지만 본격수사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는 ‘시기조절론’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각종 사건 수사 결과 과거 참여정부 실세들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의 혐의도 잡은 듯한 정황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KTF 사건만 해도 주인 없는 공기업 성격이 강한 데다 조 전 사장이 정치권 로비를 했다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참여정부 인사에게만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조 전 사장이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의 상당액을 500만 원짜리 수표로 받아왔다는 검찰의 브리핑도 계좌추적에서 상당 부분 진척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이 정치권 일각의 관측대로 이미 일정 정도 수사결과를 내놓고도 정치적 판단 등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면 향후 정치권의 지형도는 검찰에 의해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로 정치권이 검찰에 숨도 못 쉬었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검찰의 인사권이 청와대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검찰의 독자적인 사정 드라이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