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뺄수록 표는다’ 운동화끈 ‘질끈’
▲ 9월 총선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한 피셔 장관. 과연 그가 다시 ‘날렵’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 ||
요슈카 피셔 독일 부총리 겸 외무장관(57)의 베스트셀러 <나는 달린다>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피셔 장관의 달리기를 통한 다이어트 성공담과 함께 육체와 정신을 성공적으로 개조한 자기성찰의 경험담이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1990년대 말 소개되었던 이 책은 한동안 전국에 ‘마라톤 열풍’을 일으키면서 커다란 이슈가 된 바 있다. 하지만 피셔 장관의 지금 몸을 보면 “과연 책 속의 그가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게 마련. 그도 그럴 것이 한때 혹독한 달리기로 날씬해졌던 몸은 온데간데 없고, 120kg이 넘는 뚱보의 모습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피셔 장관이 달리기를 그만두기 시작했던 것은 지난 2003년 무렵. 이리저리 겹치는 스케줄과 바쁜 일정, 그리고 때마침 터진 불미스런 스캔들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변명을 할 틈도 없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는 녹색당의 지지율을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은 물론, 오는 9월로 다가온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변화’를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마침내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부터 조깅화의 끈을 다시 묶기 시작한 그의 모습은 두 달 새 적게나마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황제의 배’라고 놀림감이 되었던 뚱뚱한 배가 다소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의 감량 목표는 20kg. 하지만 현재까지 몇 kg을 감량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그가 달리기에 몰두하면서 머물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 평지를 달리는 것 대신 경사진 언덕을 넘으면서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 첫 주에 60km를 달렸는데 숨이 차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면서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최근 일주일에 50km를 달리는 데 성공한 그는 한 번 달릴 때마다 12~15km씩을 달리고 있다. 그는 “다시 예전의 몸을 되찾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현재 목표다”고 말한다.
한참 달리기에 빠져 있던 1998년 무렵 그에게 마라톤 완주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만만한 것’이었다. 그해 ‘함부르크 마라톤’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기록은 3시간41분36초. 또한 이듬해 ‘뉴욕 마라톤’에서는 3시간5분이라는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나이도 나이인 데다가 그동안 체력도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내리막길에서는 앞꿈치에 체중을 싣지 않고 뒤꿈치부터 닿으면 무릎도 덜 아프다는 노하우를 갖고 있기도 하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거의 매일 저녁 이렇게 뛰고 있는 그는 보통 한 시간가량을 달리기에 할애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근육에 무리가 가서 통증이 오거나 업무상 출장을 가야 할 경우를 말한다.
물론 엄격한 식단 조절도 병행하고 있다.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난 후에 찾아오는 허기다”는 그의 말처럼 그에게 있어 먹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다.
때문에 혹 지쳐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간단한 곡식 빵으로 배를 채운 후 달리기를 시작한다. 달리고 난 후에는 샐러드와 소량의 육류를 섭취하는 것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 단 면류나 탄수화물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칙.
그렇다면 평소 음주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과연 술도 끊었을까. “물론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는 것이 그의 답변. 가끔 한 잔씩 하되 적포도주 한 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그의 고무줄 몸매는 한때 독일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풍자됐을 정도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처음 국회에 진출했을 당시 75kg이었던 35세의 젊은 피셔는 업무 스트레스와 과음 등으로 불과 10년 만에 112kg의 왕뚱보로 변신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비대한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세 번째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나 버리자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 그러던 중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는 결심하에 1996년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달리기에 심취했다.
밤낮으로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 결과 1년 만에 37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던 그는 다시금 75kg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인생의 승자’가 된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번째 결혼에도 실패하고 점차 운동을 게을리 한 결과 2002년부터는 또 다시 100kg대의 거구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 터질 듯한 그의 배를 보면서 그를 추종했던 독일인들이 실망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게다가 피셔 장관에게 지난해와 올해는 악몽과도 같았다. 근래 들어 녹색당 지지율마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자 스캔들’로 망신살까지 뻗치면서 인기 정치인 순위에서도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9월까지 그가 과연 다시금 날씬해진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서게 될지는 미지수. 하지만 많은 독일인들은 그의 투철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이라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가 ‘어게인 1996’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그의 두 달 후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