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집무실로 들어서자 여섯 개의 의자가 대통령 주변으로 놓여 있었다. 법무장관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고 백악관 선임고문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통령이 나만 빼고 다 나가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비켜주시오”
사람들이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나와 대통령 둘만 남았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플린은 좋은 사람이요. 수사에서 손을 떼기 바라오”
폴린은 러시아와 내통한 의혹으로 낙마한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었다. 그때 라인스 프리버스대통령 비서실장이 괘종시계옆에 있는 문을 통해 잠시 들어왔다가 나갔다. 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FBI국장 자리를 더 하고 싶소?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원하고 있소. 내가 원하는 건 충서이오.”
나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표정조차바꾸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침묵 속에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나와 차에 타자마자 노트북을 펼치고 대통령실에서 있었던 대화내용을 기록했다. 정확성을 위해서였다.>
제임스 코미 FBI국장의 진술서는 한편의 밀도 높은 소설이었다. 미국의 사법에 관한 서류들 중 상당수가 한편의 치밀한 소설이다. 대법원판결도 그렇다. 그날은 흐린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는 식으로 서두에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글이 치밀하면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상대방이 반박하기 힘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BI국장의 증언진술서에 대해 침묵했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 힐은 ‘코미 증언은 세부묘사가 완벽해 대통령이 반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변호사생활을 해 오면서 내가 공을 들인 부분은 어떻게 하면 발생했던 사건을 그리고 내가 변호하는 의뢰인의 환경이나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 하느냐 였다. 아무리 작아도 하나하나의 사건은 한 인간의 전 생애가 응축된 소설이었다. 공허한 관념적인 문장으로 그들을 변호하는 것은 가짜였다. 변호사 초기에 다른 변호사들을 보면 상투적으로 마지막에 “재판장님이 은전을 베푸시어 피고인에게 정상참작이 있기 바랍니다”라고 상투적으로 말했다. 귀에 박히도록 똑같은 소리를 들은 판사들이 지겨워하는 표정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바꿀까 생각해 보다가 이렇데 말한 적이 있다.
“검은 법복을 입은 재판장님의 심장에는 따뜻한 피가 도는 걸 변호인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이 얼어붙은 피고인에게 재판장님의 체온이 어떤 형태든 전해지기 바랍니다.”
같은 취지인데도 표현이 달라지자 재판장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무렵 읽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중에서 판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지적한 부분의 내용이었다.
우리의 판결문도 법조문도 소설같이 쉬워져야 한다. 어렵고 애매모호한 글들은 설익고 숙성되지 않은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