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폭행 문제삼자, 상사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지난 3월, 효성중공업 전력영업팀에서 15년 동안 근무했던 A 씨가 서울서부지방고용노동청에 강제근로금지, 폭행 등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대표이사와 고위 간부를 고소했다. 노동청은 지난 5월부터 조사에 착수했으며, 고소인과 또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을 받았다. 현재는 효성중공업 측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고소장을 보면, 효성중공업 전력영업팀 담당 임원 B 상무와 C 팀장은 2010년 5월부터 2014년 초까지 영업팀 특정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일명 ‘출근 꺾기’를 강요했다. B 상무는 “매일 업무 시간 전에 직접 회의를 열겠다”는 이유로 정상 출근 시간보다 1시간 30분~2시간 먼저 출근할 것을 요구했다. 회의 과정에서 B 상무는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며 인신공격을 했고,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렸다.
효성중공업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매일 조기 출근을 강요한 적 없으며, 직원들 모두 자발적으로 출근했다고 해명했다. 회의 역시 업무 지시와 직원 교육 차원에서 이뤄졌을 뿐, 욕설과 폭언, 부당한 지시 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오히려 “고소인 A 씨가 인사평가 점수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 유포와 상사 명예훼손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업무 지시 불이행, 태도 불손 등도 일삼아 왔다”며 “이 때문에 징계를 받고 해고 처분이 내려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앞서의 효성중공업 C 팀장은 “고소인이 그동안 동료와 상사 등을 수차례 형사 고소도 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회사 내부에선 고소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사실과 다른 해명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내부 자료와 녹취 파일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회사 측 주장과는 다른 점들이 포착됐다. 문제가 된 회의는 대부분 C 팀장을 거치지 않고 B 상무가 직접 열었다. 2013년 B 상무 주최 회의 내용이 녹음된 녹취 파일을 그대로 옮기면, B 상무는 “수주를 어떻게 하면 잘하겠느냐”고 물으면서도 “현대중공업, LS산전 등 경쟁사의 중요한 기술 정보를 빼낼 방법을 제시하라” 또는 “부정경쟁방지법 내지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해서라도 실적 달성하라”고 지시했다.
고위 임원이 직원들에게 산업기술 유출이나 현행법을 위반해서라도 실적을 달성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정상적인 업무지시나 교육 차원에서 열린 회의’라는 회사 측 해명과는 달랐다. 특히 B 상무가 이를 지시하는 과정에는 욕설이 섞여 있었으며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나이를 어디로 X먹었냐. 대학은 나온 거 맞냐”는 식의 인신공격도 나왔다.
녹취 파일은 42분 분량으로, 오전 7시부터 녹음이 시작됐다. 당시 효성중공업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다. 대화 중간부터 녹음이 시작된 정황을 볼 때, 직원들은 오전 7시보다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한 것으로 보인다. 조기 출근은 효성 측이 지난 6월 초 노동청에 제출한 고소인의 2013년~2015년 출퇴근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기록에서 고소인은 앞서의 기간 동안 6시, 7시 등 정상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근해왔다.
고소인이 불만을 품었다는 인사평가 역시 회사 측 주장과 달랐다. 앞서 효성중공업 C 팀장은 “내부 규정상 직원 10%는 최하위 점수인 ‘D’를 줘야만 한다”며 “고소인의 실적이 다른 직원들과 비교해 상당히 저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회사 측에서 나온 고소인의 인사기록을 확인 결과, B 상무, C 팀장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인사평가와는 달랐다.
고소인은 2012년 11월 효성중공업 최우수 영업 사원에게만 수상하는 ‘Golden Oder’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승진했다. 2013년 12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과의 수주 실적을 인정받아 ‘이달의 모범사원’ 표창과 상금을 받았다. 이에 대해 C 팀장은 “고소인이 승진 직전 직급에서 꽤 오랜 시간 적체돼 있었다. 후배들도 승진을 하고 있어, 승진 배려 차원에서 ‘Golden Oder상’을 상신했던 것”이라며 “이달의 모범사원상은 격려와 동기부여 차원에서 수여하며, 큰 문제가 없으면 직원들이 골고루 받게 된다. 여기에 이 표창은 고소인이 직접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효성중공업은 2012년 초 조현준 회장의 직접 지시로 승진을 위한 부서 내 ‘상 밀어주기’를 엄격하게 금지해 오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승진과 관련, 부서 내부 평가에 이어 인사팀이 별도로 2차 검증을 한다. 팀장 추천만으로는 표창 수여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C 팀장은 “직원이 요구하면 다 표창을 수여하느냐.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없었냐”는 기자에 질문에는 “직원들이 골고루 받는 상”이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 왜
고위 임원이 직접 나서 특정 직원을 대상으로 ‘가혹행위’를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에 대한 회사 측 답변은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혹행위의 이유와 ‘원인’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효성 측은 ‘내부 제보자’를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배신자’로 몰아세웠다.
먼저 B 상무에게 가혹행위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직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한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2010년 4월 효성중공업 영업팀 워크숍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이다. 당시 자리에 함께 있었던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저녁 술자리에서 앞서의 C 팀장이 신입사원을 일방적으로 수차례 폭행했고, 신입사원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B 상무는 다른 직원들에게 붙잡아 둘 것을 지시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함께 있던 일부 직원들이 회사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나섰다. 당시 B 상무와 C 팀장은 부서 내부 차원에서 사과하고 마무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문제제기를 주장했던 직원들은 모두 앞서의 조기 출근과 회의 참여 명단에 포함됐다.
고소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는 2013년 1월부터 효성중공업 내부의 ‘수주 실적 조작 및 부실 수주 은폐’ 행위에 대해 B 상무와 C 팀장을 상대로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상 수주로 실적을 부풀린 뒤, 막상 손실로 잡아야 할 시점에서 이를 모두 삭제 처리한, 회계부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가 <일요신문>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당시 회계부정 규모는 전력 PU 1개 팀에서만 88억 원, 중공업 전체 규모로 보면 300억 원이 훌쩍 넘는다. 이 사실은 지난 2015년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기도 했다.
고소인은 B 상무와 C 팀장에게 “이러한 행위는 최고 경영층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며 효성그룹 경영층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 상무와 C 팀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는 또 앞서의 2013년 1월부터 퇴직 임직원들과 내부 관계자들이 공모해 특약점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앞서의 회계부정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고소인은 B 상무와 C 팀장에게 시정조치나 회사 감사팀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그룹 차원에서 별다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고소인과 B 상무, C 팀장과의 갈등이 격화됐다. 고소인의 주장과 효성중공업 측이 노동청에 제출한 출퇴근 기록을 비교하면, 그는 이때부터 앞서의 조기출근과 회의 참석 대상자 명단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고소인은 2013년 5월 효성중공업 내부제보시스템으로 앞서의 불공정한 관행과 비위 사실을 정리해 실명으로 제보했다. 효성중공업 측에서 작성한 고소인의 ‘징계 의결서’와 메일 기록 등을 보면, 실제로 그는 그룹 경영층과 인사팀, 감사팀 등에 수차례 제보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회사 감사팀 등은 움직이지 않았다. 회사는 “B 상무와 C 팀장을 상대로 사실 확인을 한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이후 B 상무와 C 팀장의 고소인에 대한 가혹행위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표창을 받는 등 우수한 실적을 회사로부터 인정받았음에도 B 상무와 C 팀장으로부터 받은 인사평가는 ‘D’에 불과했으며, 돌연 14년간 근무하던 영업팀에서 현장에 제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팀으로 인사발령이 나기도 했다.
고소인은 “B 상무는 ‘계속 회사에 이런 내용(비위 사실)을 알려 봤자다. 당신도 회계부정의 공범이고 주동자다. 조용히 있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요신문>은 B 상무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C 팀장은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현재 효성중공업 측의 입장은 “고소인이 인사평가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소인은 실제로 지난 2014년 초부터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정직 처분과 해고 처분을 차례로 받았다. 고소인이 가혹행위부터 회계부정 등 있지도 않은 비위 사실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회사 임직원들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얘기다.
고소인은 현재 심리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진단서를 보면 그는 ‘비애반응’ 진단을 받았다. 우울감과 자괴감, 좌절감 등의 원인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증상이다. 그는 “2013년부터 2015년 말 해고당하기 직전까지 회사 내부에서 잘못된 관행과 비위 사실들을 바로 잡으려고 수차례 제보를 했다. 지금까지 회사 밖에 알리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을 알리고 바로 잡자는 말이 모두 묵살되고, 오히려 회사는 나를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단독확인] 고리원전 핵심부품 납품 실수‧은폐 의혹 2013년 5월 효성중공업 고리, 월성 원자력 발전소 납품 비리‧은폐에도 고소인이 연결돼 있다. 이는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이다. 2013년 효성중공업 창원 2공장 설계팀 관계자가 실수로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부품인 변압기 내부 냉각팬을 설치하지 않았다. 구동전압 설정이 잘못돼 냉각팬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주가 지연된 상태에서 실수가 발견되자 효성 공장 측은 냉각팬을 제거하고 한수원에 검수를 받은 뒤, 그대로 납품했다. 실수를 감추고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닌 데도 원자력 발전소에 그대로 납품한 것이다. 이 내용은 <일요신문>이 입수한 2013년 7월 5일 오전 9시부터 녹음된 관련자들의 회의 녹취 파일에서 모두 확인된다. 뒤늦게 납품 실수와 은폐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한 고소인이 급하게 열었던 회의다. 고소인은 이 회의를 개최한 뒤 B 상무로부터 더욱 노골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녹취 파일을 들어 보면, 당시 회의에는 효성중공업 창원 2공장 설계팀, 품질경영팀, 고소인을 포함한 본사 영업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한 관계자들 모두 직함과 실명이 나온다. 이 관계자들은 납품 전부터 설계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 공장 설계팀 관계자는 “문제가 있었으면 한수원이 받질 말았어야지 왜 이제 와서 우리한테 따지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납품 당시 설치되지 않았던 냉각팬은 일주일 만에 제대로 설치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 사이 벌어진 또 다른 비위 사실이 <일요신문>에 포착됐다. 효성중공업 창원2공장 품질경영팀은 자체적으로 “설계를 실수한 직원은 징계해야 하며, 이 조치가 고객(한수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조치”라고 판단해 징계를 내리려 했으나, 효성중공업 창원 2공장 D 상무 지시로 무마된 것이다. D 상무는 본사 영업팀과 실수한 설계팀 직원, 팀장을 따로 불러 법인카드를 건넸고 “어떻게든 설득해서 마무리해라”라고 지시했다. 앞서의 셋은 2013년 5월 창원 상남동의 한 단란주점에서 한수원 검수 감독관을 상대로 수백만 원 상당의 술 접대를 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설계팀 직원 등은 “상부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참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