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정례회동 표류에 통신 기본료 폐지 등 정책 결정 배제 의혹도
더불어민주당이 위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인사추천권을 둘러싼 당·청 갈등에서 추미애 대표가 체면을 구기더니, 최근엔 따돌림 정황도 엿보인다. ‘원팀’이 아니라 사실상 ‘투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딜레마다. 고공행진 중인 문 대통령에게 직언하면 당·청 갈등, 로우키에 그친다면 거수기 논란에 각각 휩싸인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6월 19일 당사를 방문한 김부겸 장관을 만나는 모습. 박은숙 기자
여의도 정가에서는 ‘여당 따돌림’ 사태의 대표적 사례로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정례회동 표류, 여당 의원이 배제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진표)의 일방 독주 등을 꼽는다. 앞서 문 대통령은 6월 9일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3일 뒤 예정된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을 앞두고 당·청의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부 출범 한 달여 만에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만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국회를 찾아 자유한국당부터 정의당까지 야권 지도부를 찾은 것과 대비된다.
청와대를 방문한 추 대표는 “대통령과 정례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자”며 당·청 정례회동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을 놓자는 것이다. 당시 여당 내부에서도 당·청 정례회동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당장 여러 난제를 풀어야 하고, 여야 협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례화하는 것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면서도 “자주 만나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답했다. 여의도 안팎에선 ‘자주 만나도록 노력하겠다’보다는 ‘이르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청와대가 주도권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다는 시그널로 읽혀서다. 문 대표는 6월 12일 추경 시정연설 후 국회에서 추 대표와 따로 독대하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간 민주당 내부에서는 ‘소통정부 역설’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인사들이 일자리 추경 등의 협상차 국회를 직접 방문하자, 되레 집권당의 입지가 급속히 좁아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청 간 소통은 성공한 정부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면서도 “민주당이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범야권 구도로 짜인 정국에서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확보, ‘민주당=청와대 출장소’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정국 주도권이 청와대로 급속히 기운 것은 80% 안팎에 달하는 문 대통령의 지지도 고공행진과 무관치 않다. 민주당 지지도 역시 50% 전후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 이후 최고 지지율이다. 하지만 당·청 주도권 다툼에선 문 대통령의 원사이드 게임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집권 초인 데다,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높은데 당분간 보조를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야당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50∼60%로 조정되기 전까지는 수직적 당·청 관계 모습을 연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6월 20일 추 대표 비서실장인 ‘문재인 키즈’ 문미옥 의원을 차관급인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 임명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추 대표가 인선한 지 한 달여 만에 보직을 바꾸는 셈이다. 청와대에 입성한 문 과학기술보좌관은 국회법 제29조 겸직금지 조항에 따라 비례대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의원직은 문 대통령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수혁 전 독일대사가 승계한다. 이 전 대사는 지난해 4·13 총선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인사로, 대표적인 ‘문재인 사람’으로 꼽힌다. 청와대의 ‘문미옥 카드’에는 측근의 원내 진입 이유도 한몫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과정에서 민주당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야당 때 반대편의 여성관을 고리로 사퇴 촉구 성명서를 냈던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공식적으로 일언반구로 일관했다. 추미애 대표·우원식 원내대표도 안 전 후보자의 의혹이 불거졌던 6월 16일 사퇴 의견을 내기를 주저했다. 야권은 민주당을 향해 “왜 침묵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한 여성 의원은 “부적절한 인사”라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침묵하던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비공식으로 청와대에 관련 의견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안경환 사태’에 침묵하던 추 대표는 ‘문정인 발언’ 논란에 대해선 적극 방어선을 쳤다. 추 대표는 6월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날 귀국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보의 발언 논란과 관련해 “미국 조야가 한국이 겪는 문제를 잘 모른다”며 감싸기에 나섰다. 또 추 대표는 보수진영의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지나친 호들갑”이라며 역공을 취했다.
특히 추 대표는 6월 1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특보를 지칭하며 “용기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때는 청와대가 문 특보 발언에 대해 ‘엄중 경고’하며 파문 진화에 나서기 직전이다. 청와대와 여당 대표가 시간차로 외교 현안에 대해 엇박자를 낸 셈이다. 당 안팎에선 청와대와 여당 간 역할분담론에 따른 ‘계산된 시나리오’라는 분석과 함께 당·청 간 이상기류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당 한 관계자는 “역할 분담”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청와대 독주 정황도 속속 포착된다. 정책결정 배제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이동통신사 ‘기본료 폐지’를 놓고 국정기획위가 일괄 폐지에서 자율 사항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사이, 여당 소속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다.
국정기획위에 들어가지 못한 여당 의원들은 ‘미래부 업무보고 보이콧’, ‘최후통첩’ 등의 정국 핫이슈에서 비켜서 있었다. 민주당 소속 미방위 위원들은 6월 12일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과의 회동에서 국정기획위의 일방 독주 문제를 건의했지만, 기본료 폐지가 무산된 6월 19일까지 국정기획위가 여당 소속 미방위원들과 관련 협의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내정설을 놓고도 여당 소속 정무위원들이 반기를 드는 등 당·청 갈등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김석동 카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추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경기고 동창이다. 이에 개혁파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모피아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의도에서 박 의원을 비롯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반대를 위한 ‘연판장을 돌렸다’는 확인되지 않는 말까지 나오는 등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박 의원은 “연판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부에선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이 해임 촉구를 발표한 김 전 위원장을 무슨 명분으로 받아들이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재 민주당의 모습은 정국 주도권을 잃고 때로는 엇박자, 때로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 민주당이 내부 전략 재정립에 나서지 않는다면, 집권 5년 내내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수직적 당·청 관계와 여소야대 정국이 결합하면 할수록 민주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기울어진 의회 지형에서 민주당은 당장 국정감사 정국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