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그의 가사상태가 식중독 증상에 수면제를 복용한 것이 원인이라고 밝혔지만, 백번 양보해 그게 사실이라 해도 혼수상태를 1년 이상 방치하다 사망 직전 상태에서 풀어준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고문에 의한 사망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웜비어의 죽음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생생한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북한의 비참한 인권상황이 간헐적으로 폭로됐지만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 국내에서조차 남의 일로 취급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을 때도 정치적 의미만 따졌지, 인권적 측면은 간과되었다. 유엔의 대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이나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조치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외국인이 호기심에서 벽보를 떼어낸 행위는 다른 나라 같으면 훈방이나 벌금으로 끝날 사소한 비행이다. 이것이 북한에서는 반역죄에 해당돼 15년 노동교화형에 처했다니, 외국인에게 그런 법이 자국인에게 어떠했을지는 불문가지다. 이런 폭압적인 법으로 인권을 말살해온 공포정치의 실상이 거기에 있다.
북한에서 인권은 김정은 혼자만 누리는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 신세다. 김일성 3대의 세습왕조는 대를 이을수록 학정이 심해져 3대째인 김정은에 이르러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도 장성택 처형에 고사포를, 김정남 암살에는 독극물을 이용하는 등 잔혹의 극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대와 대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달성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의 앞날은 험난하다. 문 대통령은 웜비어 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 “북한이 인류보편의 규범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개탄스럽다”라고 했다. 이는 동족의 입장에서 북한이 저지를 만행에 대신 용서를 구한 의미도 있지만,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바뀐 것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유엔의 대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정부의 찬반 입장에 관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도록 했다는 게 송민순 전 외교장관 회고록의 내용이다. 지금의 여당은 야당 시절 국회에서 발의된 북한인권법의 처리를 북한의 내정간섭이네, 인권보다 먹는 문제가 시급하네 하며 10년 넘게 저지한 전력도 있다.
지금도 북한에는 한국인 6명이 대책 없이 억류 중이다. 정부 여당은 그런 안이한 대북인권인식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음을 거울삼아야 한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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