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나 그거나 VS 그게 어디냐…고용안정 반면 처우개선 미미 ‘선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과 민간을 막론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런데 공기업 부문에서 정책 시행을 선도하는 인천공항공사는 협력업체 비정규직에 대해 공사 소속 정규직 채용이 아닌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방침을 세워 ‘꼼수’ 라는 지적을 받는다.
SK브로드밴드 외주업체 설치기사가 현장 위험을 무릅쓰고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지부
민간 선도기업인 SK브로드밴드 역시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방침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고용은 고용안정 측면은 강화되나 인건비 절감과 함께 유사시 자회사 분리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인터넷과 IPTV 설치·수리업무를 협력업체에 위탁해 왔다.
협력업체들이 비정규직 신분의 개인사업자인 기사와 고용관계를 맺다보니 장시간노동, 저임금, 고용불안, 근속 불인정 등으로 인한 노동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4년 3월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지부(노조·지부장 이해조)를 결성해 SK브로드밴드와 모회사인 SK텔레콤에 직접고용을 촉구해 왔다.
3년 넘게 꿈쩍 않던 SK브로드밴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지난 5월 21일 103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5200여 명을 7월 1일부터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 SK브로드밴드의 움직임은 전광석화 같았다. 6월 초 SK가 빠진 ‘홈앤서비스’란 사명으로 자회사를 설립했다. SK브로드밴드는 자회사 설립을 위해 자본금 460억 원을 출자하기로 하고 회사 대표로 유지창 회사 인프라부문장을 선임했다.
아울러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들에게 위탁업무 계약 종료에 합의해줄 것을 통보해 28일 현재 협력업체 수가 5개로 줄어든 상태다. 전직 외주업체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가 정부 시책에 맞춰 사실상 외주업체를 일괄 정리한 셈”이라며 “외주업체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SK브로드밴드 자회사에 상대해 외주업체가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라고 지적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포화상태로 외주업체들의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노사갈등도 심화됐다”며 “정부 시책에 맞춰 당사가 긴급히 방안을 정했다는 주장은 억측이다. 올해 1월 이형희 대표가 부임하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여러 방안을 점검해 오던 차였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6월 대다수 외주업체와 계약이 만료된다. 당사 결정에 따라 지난 5월부터 업무 종료를 외주업체에게 제안해 왔다”며 “강제성은 전혀 없다. 업체 대표들에게 금전 보상, 설립한 자회사에 채용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안정 측면에서 좋아지나 실질적인 처우개선에는 미미할 전망이다. SK브로드밴드와 노조는 현재 직원 처우문제와 관련한 교섭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SK브로드밴드 정규직은 1600명으로 이들의 1인당 평균 연봉은 8000만 원에 달한다. 반면 비정규직 77명의 연봉 평균은 2400만~2500만 원 수준이다. 노사 협상으로 10~15% 연봉이 오른다 해도 SK브로드밴드 직원들의 연봉의 3분의 1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노조 관계자는 “구체적인 노사 협상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통상임금 인상, 근속년수 인정, 휴일 유급휴가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또한 SK브로드밴드가 정한 홈앤서비스 명칭을 SK홈앤서비스로 변경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처우개선은 매해 점진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사의 결정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안정 측면에서 매우 좋아졌다. 임금도 오를 전망이다”라며 “홈앤서비스란 이름으로 6월 초 등기를 마쳤다. 계열사 이름에 SK를 붙일지 여부는 그룹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장익창 비즈한국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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