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96학번들’ 모른 척 못할 걸?
▲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정계에 복귀한 김현철 씨. | ||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으로 문민정부 시절 ‘소산’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김현철 씨(49)가 최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비상근)으로 정계 일선에 돌아왔다. ‘김 소장’은 그가 야당 및 문민정부 시절 여론조사 연구기관을 운영할 때 민주계 인사들이 붙여준 호칭.10년 만의 정계 복귀 이후 그의 호칭이 ‘김 부소장’인 것도 이채롭다. 과연 김 씨는 대를 이어 ‘성공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김 씨의 ‘여의도 컴백’은 말 그대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지난 10월 28일 정식으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임명장을 받았지만 그의 ‘정계 복귀’ 시도는 2002년부터 여러 차례 있었다.2002년 8·8 경남 마산 합포 재선거 출마를 추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김 씨는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해 YS의 간접지원을 받아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당시 이회창 대선후보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씨가 재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자 상도동(YS 자택)과 통하는 모든 라인을 동원해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던 김 씨는 막판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18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김 씨는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 출마할 생각에 한나라당 공천을 바랐지만 신청도 못하는 지경을 맞게 됐다.1998년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전력 때문에 공천 신청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다.
당시 김 씨는 물론 YS의 낙담과 분노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에서 YS가 ‘이명박(MB) 대통령 만들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숙원인 아들 현철 씨의 정계진출 길을 한나라당이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YS는 역시 공천에서 탈락한 옛 가신 김무성 의원의 부산 남구 을 사무실을 찾아 “이번 한나라당 공천은 실패한 공천, 잘못된 공천이다.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말과 10월 초 선친 김홍조 옹의 장례를 치르면서 YS와 현 여권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고 그간 당내에서 논란이 됐던 현철 씨의 ‘여의도연구소 입성’도 결국 이뤄질 수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김 씨는 이제 당의 공식직함을 갖는 ‘현역 정치인’이 됐다. 그는 임명장을 받은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솔직히 기쁘고 기분이 좋다. 여의도에 오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10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여러 감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YS의 아들이 아닌 김현철로서 역량을 발휘해봤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큰절을 올리는 홍준표 원내대표. | ||
이 중진은 “김 씨의 가장 위력적인 정치적 배경은 역시 YS다. 지난번 고 김홍조 옹 상가에서 확인했듯 아직 YS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은 녹슬지 않았다. 김 씨가 한나라당에 안착하기까지 YS가 때로는 병풍 역할을, 때로는 분위기 메이커로 나서지 않겠느냐. 지금 여권에서 누가 YS의 말을 그냥 흘려 들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박희태 대표와 안경률 사무총장은 김 씨의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임명에 대한 명분으로 “대통령까지 지낸 국정지도자이자 우리 당의 원로인 YS에 대한 예우”라며 당내 반발 진화에 직접 나서 눈길을 끈 바 있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다.YS와 직·간접적인 인연이 없는, 특히 지역적으론 수도권, 선수로는 3선 이하 의원들은 한마디로 ‘왜 김현철 씨를 놓고 호들갑이냐’는 기류가 짙다. 소장파 그룹에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원희룡 의원 등은 내놓고 “김 씨와 관련해 과거에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 않느냐”고 말할 정도다.
한 재선 의원은 “김 씨의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임명은 한나라당 진입의 길을 터줬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총선은 4년 가까이 남았고, 설혹 그가 재·보선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에 출마할 수 있겠느냐.그는 ‘과거 실세’일 뿐이며 역량을 갖췄다고 한들 그만 한 능력 있는 사람은 당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들 YS의 존재를 언급하는데 모든 것은 김 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니냐”며 “정치인 김현철의 존재 여부는 이제 YS가 아닌 그 자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