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진상조사위 결과 나올 때까지 보류키로…불교계 일각 ‘짬짜미 의혹’ 제기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최 아무개 씨가 신입 수습 여직원을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논란이 일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는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재단 신입 수습 여직원을 추행한 혐의로 선학원 이사장 최 아무개 씨(64)를 지난 4월 28일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해 8월 강원도 속초 등지에서 여직원 A 씨의 신체를 만지며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씨는 지난해 8월 5일 A 씨에게 “할 말이 있으니 금요일 저녁에 시간을 비워두라”고 한 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A 씨를 차에 태우고 강원도 속초로 갔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최 씨는 속초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A 씨의 손을 잡거나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졌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었다. 최 씨는 속초의 한 모텔 주차장에 차를 댄 뒤 근처 식당에서 A 씨에게 술을 권하며 수차례 “쉬었다 가자”고 하거나 “일출을 보고 돌아가자“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술자리가 끝나고 최 씨는 A 씨에게 ”방 안에 방이 하나 더 있으니 구경이라도 하라“며 모텔 승강기에 태우려 했다고 알려졌다.
그날 이후 A 씨는 업무를 이어갈 수 없었다. A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지난해 8월 말부터 정신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다음 달부터는 출근을 중단한 뒤 쉼터에 입소했다. ‘혼재성 불안 및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 복용 및 프로그램 치료를 병행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19일 경기 수원 중부경찰서에 최 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은 서울 종로경찰서로 이첩된 뒤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넘겨졌다가 현재 서울북부지검에서 공판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북부지법에서 1차 공판이 열렸으며 오는 20일 2차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최 씨는 A 씨가 제기한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최 씨는 지난해 12월 5일 전국 선학원 분원장에게 ”고소당한 건 사실이지만 고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인 대응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최 씨는 선학원 임직원 일동 명의로 “지금 재단과 이사장을 음해하려는 세력에게 명예가 위협받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입장문 발표 10일 뒤인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선학원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최 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법인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최 씨가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이뤄진 조치였다. 이날 이사회는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직서 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문제는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무런 조사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선학원 소속 승려와 불교단체는 최 씨의 사의 표명에 발맞춘 재단 임원진의 진상조사위원회의 발족이 ‘짜인 각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한 승려는 ”선학원 이사회 임원 15명 가운데 5명이 진상조사위원으로 나섰다. 이 가운데 3명이 공사찰 주지이고 1명은 공사찰과 사사찰 주지를 동시에 맡고 있다“며 ”선학원 이사장은 공사찰 주지의 임면권을 가진다. 진상조사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이사장 최 씨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인사다. 이사장은 여론에 못 이겨 사표를 쓰는 척하고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를 보류하게끔 만들어진 각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선학원 진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곧 진상조사위원회 모임이 있을 예정이다. 추후에 내용을 발표하겠다. 현재로서 따로 남길 말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 씨의 대응에서 모순이 발견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 씨는 지난해 12월 5일 입장문과 동시에 성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나 이에 앞선 지난해 11월 중순쯤 자신의 변호사를 거쳐 A 씨에게 합의를 제시했다고 전해졌다. A 씨가 내놓은 문자 내용에 따르면 최 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A 씨에게 합의금 1500만 원을 제시하며 합의 의사를 물은 바 있었다.
선학원의 분원장 일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선학원의 미래를 생각하는 분원장 모임’을 꾸려 ‘이사장의 사퇴 촉구와 선학원 창립정신 회복을 염원하는 월요집회’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기 시작했다. 성평등불교연대 역시 수요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월요집회는 지난 3일 26차를 넘겼다. 집회 참여자들은 이사장뿐만 아니라 이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이사회 전체에게 ”즉각 사퇴할 것“을 추가로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최 씨는 자신의 성추행 혐의와 관련해 세 차례 고소전을 진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 씨는 지난해 12월 A 씨를 절도와 명예훼손, 모욕, 개인정보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최 씨는 진상규명을 촉구한 불교여성단체 활동가와 이 사건을 보도한 <법보신문> 기자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알려졌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선학원은 어떤 곳? 대한조계종의 모체로 불려 선학원은 남전·도봉·석두 스님이 1921년 11월 30일 설립한 불교 재단법인이다. 전국 사찰의 8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의 모체로 불린다. 보통 사찰은 ‘사(寺)’나 ‘암(庵)’ 등의 명칭이 맨 뒤에 붙는다. 선학원이 보통 사찰과 다른 이름을 가진 이유는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사와 암이 붙은 사찰을 직접 관리하며 일본 불교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일본 불교는 결혼 뒤 가정을 꾸린 대처승을 인정하는 등 기존의 한국 불교와 이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선학원 로고. 출처=선학원 홈페이지 역대 이사장으로는 만공 스님을 비롯, 석주·청담·벽암·진제 스님 등이 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