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대부분 제작자의 중학교 동창으로 드러나
서울 성동경찰서는 음란물 유통 및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이 아무개 씨(19)를 지난 5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동창생 A 씨(19·여) 등 9명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뒤 개인정보와 함께 배포 및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총 12명이다. 경찰은 피해자 12명 가운데 9명이 제출한 증거를 기초로 수사에 나섰다. 심지어 피해자 6명은 만 19세 미만이다.
A 씨가 자신의 사진과 음란물이 합성된 사진이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반 년 전이었다. A 씨는 지난 1월쯤 친구에게 “네 사진이 음란물과 합성돼서 소셜 미디어에 올라 왔다”는 말을 들었다. A 씨는 친구가 말한 소셜 미디어에 가봤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음란물과 합성된 자신의 사진은 ‘지인합성전문’ 혹은 ‘합성몬스터’라는 계정으로 유명 소셜 미디어 4곳에서 돌고 있었다. 판매도 됐다. A 씨는 “원하는 사람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한 사진 5장에 문화상품권 5000원이다. 배포까지 해주겠다”며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 검증됐고 신뢰도도 있는 사람이다. 많은 구매 바란다”는 글까지 발견했다.
합성 음란물 판매글. 사진=소셜 미디어 캡처
A 씨의 친구들 사진도 여럿 올라와 있었다. A 씨와 친구들은 지난달 15일 피해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두 12명이었다. 이 가운데 11명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1명은 졸업한 중학교는 달랐지만 피해자들과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였다. 피해자들은 “용의자가 우리와 가까운 사람일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용의자의 신상 파악에 주력했다.
우선 피해자들은 익명으로 용의자에게 접근했다.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든 뒤 용의자의 의심을 피하려 다른 음란물 계정의 글을 옮겨 놓거나 이상한 글도 함께 올려 뒀다. 피해자들은 얼마 뒤 용의자에게 말을 걸어 합성 음란물 구매의사를 내비쳤다. 대화가 몇 차례 오간 다음 용의자는 자신의 메신저 ID를 피해자들에게 넘겼다.
용의자의 메신저 ID가 확보되자마자 한 피해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친한 이성친구가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ID와 용의자의 메신저 ID 뒷부분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심증이 구체화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의자는 피해자들이 건넨 문화상품권을 실명으로 사용 등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드러냈다. 용의자의 실명은 한 피해자의 친한 이성친구 이름과 똑 같았다.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좀 더 확실한 단서를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용의자의 횡포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용의자는 자신의 합성 음란물을 받아 보는 사람들에게 피해자들 개인정보를 공개하며 “직접 메시지 보내 능욕하라. 답장이 오면 내게도 전달 부탁한다”는 식으로 조롱을 독려했다. 피해자들의 실명과 전화번호, 집 주소, 직장, 학교, 명함 사진, 주민등록증 사진, 소셜 미디어 주소 등이 합성 음란물과 함께 용의자의 게시물에 올랐다.
피해자의 고통을 즐겼던 용의자. 사진=소셜 미디어 캡처
용의자의 자료를 받아 보던 누리꾼 가운데 일부는 실제 피해자들에게 연락해 “나랑도 하자”고 하거나 성매매 문의를 하는 등 2차 피해까지 입혔다. 이에 피해자들은 “그만하라” 혹은 “진짜 고소하는 수가 있다”는 등의 분노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쏟아냈다. 용의자는 피해자들의 이런 반응을 즐겼다. 피해자들의 반응을 화면에 담아 올리며 “해볼 테면 해 봐라”, “성과가 나온다”는 글귀를 함께 적었다.
피해자 개인정보가 음란물과 함께 공개되자 익명의 남성들은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등 수시로 2차 피해를 입혔다. 사진=제보
그러던 가운데 용의자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피해자들의 반응을 배포하다가 자신의 사진도 함께 올려 버렸다. 용의자는 실명 계정으로 피해자의 분노 화면을 담은 뒤 합성 음란물 배포 계정으로 이를 공개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그맣게 포함된 자신의 사진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이 사진을 보자마자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았다. 심증은 확증으로 변했다. 용의자 사진은 한 피해자의 절친한 이성친구 이 씨가 맞았다.
피해자의 반응을 조롱하다 실수로 자신의 사진을 하단에 노출한 용의자. 사진=소셜 미디어 캡처
이 씨는 자신이 좋아했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합성 음란물을 제작해 왔다고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용의자가 이 씨로 확실하게 드러난 뒤 피해자들 사이에서 공통점 하나가 발견됐다. 피해자들 모두 이 씨에게 한 번쯤 고백을 받거나 호감 표시를 받았던 여성들이었다”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이 씨와 매우 친한 사이여서 날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최근 들어서야 이 씨가 예전에 날 좋아했었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고 했다.
피해자는 12명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씨는 약 2년 전부터 지인 합성 음란물을 제작하고 판매해 왔다고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합성 음란물을 구매하는 척하며 이 씨에게 접근했을 때 ‘어떻게 널 믿고 문화상품권부터 보내냐’고 물었더니 이 씨가 ‘이 일을 2년 넘게 해 왔다.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의 수사 확대를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이 씨의 문화상품권 계정을 잘 뒤져 보면 이제까지 이 씨의 합성 음란물을 구매한 사람을 모두 찾을 수 있다. 압수수색을 해서 증거를 입수해 이 합성 음란물을 구매한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사진을 받아 본 사람은 최소 6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파악됐다. 이 씨는 음란물 배포로 신고가 돼 계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활동하는 소셜 미디어를 바꿔왔다. 이 과정에서 평균 6000명이 고정적으로 이 씨의 변경된 궤적을 따르며 배포자료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이 씨는 고정 독자 6000명을 자랑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서울지방경찰청과 협조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씨의 소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씨의 여동생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합성 음란물 피해를 봤다고 알려졌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이 씨의 이중성 취재 과정에서 이 씨의 이중적인 모습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지난달 한 피해자가 자꾸 올라오는 자신의 합성 음란물 때문에 힘들어하자 이 씨는 피해자를 달래며 “나도 네 이야기 들었다. 그 사람이 아직도 활동할 줄은 몰랐다. 힘내라”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힘들다”는 글에도 이 씨는 “그 사람 정말 극도로 혐오스럽다”는 글까지 남겼다. 이 씨의 이중성은 이 뿐만 아니었다. 이 씨는 지난 5월 21일 자신의 여자친구 소셜 미디어에 “내 여자친구의 학교 남성들, 적당히 하라”라는 글을 남겼다. 이 씨는 “내 여자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건 좋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여자친구와 연락하고 댓글로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많이 봤다. 나와 여자친구가 연애하면서 올리는 사진과 애정표현 등을 보고 장난치면서 희롱하는 게 잘못한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보라”며 “행실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조심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