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기억에 30년간 고통”
월간지 <베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당했던 성추행 사실을 진솔하게 털어놓은 그녀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상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성추행한 장본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이모부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뒤늦게나마 과거를 털어 놓은 것은 한 소녀의 억울한 죽음 때문. 지난 2002년 역시 자신의 이모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던 14세 소녀가 결국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분개한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급기야 이모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해처가 이모부인 리처드 헤이스 스톤(67)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은 지난 1970년 무렵. 당시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부모와 이모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5세 소녀 해처는 처음에는 다정다감한 이모부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친절이 사실은 술수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당했던 성추행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처음 성추행이 이루어졌던 자동차 안의 카펫 색깔에서부터 이모부가 바지를 내리고 자랑스럽게 내보였던 ‘그것’,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음란한 행위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그녀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몸서리친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그가 나를 만지고 추행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니?’라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그는 ‘너도 언젠가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피한 마음에 당시 부모는커녕 아무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못했던 해처는 그렇게 홀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한때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하는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 자신을 원망하는 일뿐이었다”면서 힘들었던 때를 회상했다.
그녀가 이모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세 무렵이었다. 해처 부모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이모부 가족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기 때문.
▲ 성폭행범 리처드 스톤. | ||
그런 까닭일까. 지난 1994년 배우 존 테니(44)와 결혼했던 해처는 결혼 9년 만에 결국 이혼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성생활이었다. 오는 5월 출간될 자서전 <타버린 토스트(Burnt Toast)>에서 그녀는 신혼여행에서 남편과 단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런 ‘섹스 없는 결혼 생활’은 그후로도 계속됐다.
이런 까닭에 테니와의 사이에서 딸 에머슨(8)이 생긴 때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딸을 임신한 것은 1997년 밸런타인 데이였다. 그해에는 딱 한 번 남편과 섹스를 했는데 그날이 바로 밸런타인 데이였다”고 말했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신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던 해처는 지난 2002년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어머니가 보내온 캘리포니아의 지역 신문에 실린 한 14세 소녀의 권총 자살 사건 때문이었다.
사라 반 클림푸트라는 이름의 이 소녀가 남긴 짤막한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애매모호한 말만 적혀 있었다. “평범한 10대 소녀가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딕에게 물어보세요!”
여기서 말하는 딕은 소녀의 가족과 절친한 이웃이자 바로 해처의 이모부였던 스톤이었다. 스톤이 소녀의 자살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챈 소녀의 부모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일한 증인인 소녀 본인이 자살했기 때문에 스톤은 증거 불충분으로 곧 석방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친구들의 증언이나 스톤이 소녀에게 쓴 야릇한 내용의 편지 등도 그의 유죄를 확정 짓기에는 불충분했다. 또 한 명의 피해 소녀가 있긴 했지만 증언을 거부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 나서서 결정적인 증언을 해주지 않는 이상 소녀의 자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터였다.
이 소식을 접했던 해처는 한동안 망설였다. 당시 이렇다 할 배역을 맡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증인으로 나설 경우 소녀의 비극을 이용해서 유명세를 타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굳이 지나간 아픈 과거를 들춰내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석방되기 불과 이틀 전 해처는 가까스로 용기를 냈다. 자신의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결국 검찰에서 유년 시절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증언을 했다. 이로 인해 스톤은 현재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해처는 “다시는 나와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현재 미국인들은 그녀의 용감한 행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고 있으며, 이런 인간적인 면에 <위기의 주부들>의 인기가 더해지면서 그녀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