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요즈음 대중들의 코드가 뭔지 아세요? 사람들 앞에 서셨다고 가정할 때 그들이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아세요?”
젊어서부터 개인법률사무소에서 그리고 나 혼자만의 작업실에서 두더지같이 웅크리고 살아온 나는 세상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는 나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한정된 고민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강사가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맞아 나도 그래’하는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공감을 위해서는 국제정세 같은 거창한 것 보다 나의 개인적인 것들을 말하는 편이 낫죠. 얼마 전 삼성의 이재용부회장이 연설장에서 ‘우리 아버지가 아프신 데요’ 라고 시작했어요. 그런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 훨씬 다가오는 거예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건 그런 진정성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못해도 좋으니까 여유를 가지세요. 초조해 하면 사람들이 불안 해 합니다.”
젊은 여성강사의 말이 백번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현역이었다. 일주일이면 한두 번 법정에 나가서 변론을 했다. 더러 강연도 하고 이따금씩 텔레비전 대담방송에 초청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변론을 할 때 아주 조심을 해 왔다. 긴 변론 요지서를 압축해서 5분정도에 맞춘 스피치를 할 변론문을 별도로 만들기도 했다. 그걸 손에 들고 재판부와 방청석을 향해 말해왔다.
직업적으로 충실한 준비성을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 이면에 있어왔다. 그방향을 바꾸었다. 원고를 손에 들지 않기로 했다. 말하는 순간이 되면 잠시 마음속으로 그 사건에서 하나님이 내 입을 통해 전하려는 말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순간 내가 담당한 사건의 가장 핵심화두가 떠오른다. 그걸 마음을 비운상태에서 재판장과 판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한 종교인을 재판하는 법정의 마지막변론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그는 수백만 신도를 가진 민족종교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
“재판장님 그리고 배석판사님 두 분 말이죠. 지금 제 옆에 있는 피고인을 다시 한 번 보십쇼.”
판사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내 옆에 앉아있는 피고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게 억울한 죄인이 된 모습으로 법정에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인인 저는 죄인의 모습을 한 이 사람이 앞으로 수백만 신도들을 이끄는 교단의 교주가 되리라고 확신을 합니다. 백 년 전 이 민족종교를 창시한 교조가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오십년 전 이 종교를 꽃피게 한 교주가 다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 과정이 그들의 경전 속에 기록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재판과정역시 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경전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성경 속에서 지금도 박해를 한 재판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변호인은 그런 재판이 되지 않기를 빕니다.”
판사들의 눈 속에 정체모를 감정이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여성강사가 한 말대로 시작과 과정은 공감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은 이렇게 극적인 반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