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다른 히어로 무비들이 다소 완성된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번 스파이더맨에서는 말 그대로 ‘성장하는 소년 히어로’를 볼 수 있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역대 스파이더맨 무비 가운데 국내 극장가에서 최단 시간에 300만 관람객을 돌파하고 현재 5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놓칠 수 없는 포인트를 짚어봤다.
◇아이언맨과 티격태격 父子 케미, 그리고 ‘성장형 히어로’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는 가장 거리가 멀었던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유사 부자 관계성은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인기에 단단히 한 몫 했다. 전작인 <시빌 워>에서부터 15살에 불과한 스파이더맨을 전투에 참여시킨 것 때문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아이언맨은 이번 영화에서 그야말로 ‘아빠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오히려 다른 히어로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었던 과거의 아이언맨을 기억하는 영화 팬이라면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런 ‘내로남불’이 영화의 재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스파이더맨도 할 말은 많다. TV 뉴스가 아니라 유투브에나 가끔 영상이 올라오는 그런 사소한 ‘친절한 이웃’보다 어벤저스의 일원이 돼서 꿈꿔왔던 히어로로 활약하고 싶다. 이미 초인적인 능력을 갖췄는데도 자신을 열다섯 살 어린 아이 취급하는 아이언맨에게 반항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이처럼 어른의 입장과 세계를 대변하는 아이언맨이나 악당 ‘벌처’로부터 자신의 미숙함과 히어로로서의 책임감을 깨닫고 성장하는 어린 히어로를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어벤저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유명세를 떨치며 활약하는 것보다 자신만이 추구하는 정의와 이를 위한 책임감의 중요성을 깨닫는 스파이더맨의 성장은 스토리의 굵은 줄기를 담당한다.
다만 초반에 비해 다소 정신적인 성장을 했을 뿐이지 수다스럽고 깨발랄한 캐릭터는 다음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엿한 히어로가 되고 싶은 새내기 어벤저스 후보와 책임감 때문에 과보호할 수밖에 없는 아이언맨이 엮어낸 유사 부자 케미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스파이더맨의 두 번째 영화나 내년 개봉이 예정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이어질 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라도 악당하겠다” 서민형 악당 ‘벌처’에 감정 이입하는 관객들
지금껏 히어로 무비에 등장했던 악당들이 일반인들이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로 악의 길을 걷게 됐다면,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악당 벌처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유로 악당이 돼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지구 정복 등의 거대한 목적이 아닌 단순하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악당이 된 그에게 쏟아지는 옹호가 오히려 스파이더맨보다 높을 정도다.
실제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본 관객들의 대다수가 “악당이 된 이유가 너무 공감돼서 스파이더맨보다 벌처를 응원했다”라며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나온 악당들 중 가장 현실적인 악당이기에 매력이 반감될 수도 있었지만, 상대 역시 ‘소시민적 히어로’인만큼 도리어 납득이 가는 매치라는 의견이 많다. 악당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서민형이었다 뿐이지 갖춘 장비는 이전까지의 악당들과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기 때문에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고작 열다섯 살짜리 소년을 방해된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점에 비춰봐도 악당의 타이틀을 달기에는 충분하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해의 목소리가 높은 것 역시 벌처라는 캐릭터의 배경 때문일 것이라고.
◇현실 그대로 반영된 학교 속 어린 히어로의 청춘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호평 받는 이유에는 비현실적인 히어로 무비에 현실을 그대로 담았다는 점이 꼽힌다. 기존의 <스파이더맨> 영화가 다소 백인들에게 치우친 점이 있었다면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을 등장시켜 현실적인 면을 더욱 부각했다.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인 피터 파커가 사는 동네이면서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곳은 미국 뉴욕의 퀸즈 지역이다. 이곳은 백인들보다 히스패닉, 동양인, 흑인들의 비중이 높고 특히 피터 파커가 다니는 과학고등학교에도 백인이 재학생의 절반도 안 될 정도다. 당장 스파이더맨의 사이드 킥인 절친 ‘네드’도 필리핀계 미국인 배우가 연기했고 짝사랑하는 여자친구도 흑인이다. 이 같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다양한 인종 캐릭터 구성은 미국 현지에서도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현실적인 학교 생활 속에서 스파이더맨이 히어로와 평범한 학생을 넘나들며 겪게 되는 사건들도 기존 시리즈에 비해 좀 더 친근해졌다는 평이다. 스파이더맨으로 인기를 끌고 싶은 마음과 히어로 활동에 매진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의 갈등, 키스는 커녕 짝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어린 히어로의 우습고도 슬픈 청춘은 도리어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작 <시빌 워>와 같은 배경 공유…깨알 같은 카메오 눈길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바로 직전 시리즈인 캡틴아메리카 트릴로지의 마지막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와 배경을 공유한다. <시빌 워>는 히어로들의 전투로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정부가 직접 히어로들을 관리하는 ‘소코비아 협정’을 놓고 반대파인 캡틴아메리카와 찬성파인 아이언맨으로 갈라지는 히어로들의 내전을 그렸다.
아이언맨이 직접 ‘팀 아이언맨’으로 일시 영입했던 스파이더맨은 <시빌 워>에서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를 빼앗는 등 짧지만 강렬한 액션 신을 보여주면서 그의 단독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였던 바 있다.
<시빌 워> 직후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현재는 범죄자로 취급받고 있는 캡틴아메리카의 깨알 같은 카메오 출연도 눈길을 끈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아주 짧게 등장할 뿐이지만 이미 앞선 트릴로지의 막을 내린 베테랑 히어로답게 찰나의 순간마저도 인상 깊다. 캡틴아메리카의 팬이라면 특히 두 번째 쿠키 영상을 놓치지 말 것.
한편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12일 기준으로 국내 관람객 430만 명을 넘어서 역대 스파이더맨 무비 시리즈 가운데 최단기간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최연소 히어로의 활약은 내년 5월 개봉 예정된 <어벤저스-인피티니 워>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