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장관 집무실로 은밀한 초대 받았다”
▲ 맨 왼쪽사진은 성상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외교장관 대변인을 역임했던 살바토레 소틸레(60), 미스 이탈리아 출신이자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방송인 그레고라치(26). | ||
지금 이탈리아는 정치계와 연예계가 복잡하게 얽힌 최악의 섹스 스캔들이 터져 연일 시끄럽다. 한 연예인 지망생이 TV에 출연하기 위해서 정치인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은 스캔들의 주인공들이다. 외무부의 막강한 실세 중 한 명이자 외교장관 대변인을 역임했던 살바토레 소틸레(60)와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스 이탈리아 출신의 쇼프로그램 진행자인 엘리자베타 그레고라치(26)가 그 주인공들.
물론 이 둘은 이런 소문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 추잡한 소문으로 이들의 인기와 명성은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하루 아침에 ‘이탈리아판 모니카 르윈스키’로 불리게 된 그레고라치는 뛰어난 미모와 끼로 이미 자국에서는 최고의 섹시녀로 손꼽히고 있는 스타다. 얼마 전에는 슈퍼모델 하이디 클룸, 나오미 캠벨과 염문을 뿌렸던 카레이싱팀 ‘르노 F1’의 회장인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와 약혼을 하면서 더욱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앞길에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나타났다. 이탈리아 왕실의 마지막 왕자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69)의 부패 행위를 조사하던 검찰의 수사망에 덩달아 걸리고 만 것이다.
사정인즉슨 이러했다. 에마누엘레 왕자는 이탈리아와 리비아의 카지노에 불법으로 도박기계를 공급하고 동유럽 매춘부들을 알선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에마누엘레의 전화 내용을 감청하던 검찰은 또 다른 용의자로 소틸레 전 외교장관 대변인을 지목했다. 불법 밀매 행위에 소틸레가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이에 소틸레의 통화 내용도 감청하기 시작한 검찰은 원래 취지와는 다른 전혀 뜻밖의 성과물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 소틸레가 몇몇 연예인 지망생들로부터 성상납을 받고 그 대가로 방송사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의혹이다. 통화 당시 그의 입을 통해 이름이 거론된 것은 그레고라치와 또 다른 쇼프로그램 진행자인 마리아 몬제.
전화 감청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친구들이나 운전기사에게 “그레고라치와 몬제와 성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방송사에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면서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게다가 이탈리아 국영방송인 RAI에 근무하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는 이들을 ‘일급 창녀’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한 통화에서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한 여성에 대해서 “흰 바지를 입은 모습이 무척 잘 어울렸다. 마치 한 마리 조랑말이 뽐내듯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면서 칭찬을 하기도 했다.
▲ 스캔들에 연루된 또다른 방송인 몬제. | ||
그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매춘 알선 및 성상납 혐의로 자택에 연금되어 있는 상태.
사실 전화 통화 내용으로만 본다면 그의 말처럼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난 5월 그레고라치가 검사와 가졌던 비밀 대화 내용에 있었다. 당시 그레고라치는 검사에게 “소틸레로부터 ‘커피 한잔 마시자’라는 초대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초대를 받은 장소는 다름 아닌 외교장관 집무실이었으며, 처음에는 성상납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은 성관계를 맺었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방송사에서 잘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명확하게 진술했다. 또한 그녀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집무실에서도 소틸레와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으며, 다른 사무실에서도 여러 차례 비슷한 일을 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공식화되자 그녀는 결국 말을 바꾸었다. “검찰에서 세 시간 이상 조사를 받으면서 강압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던 것뿐”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RAI 방송사의 황금시간대 쇼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그레고라치는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순전히 내 능력과 머리 덕분이었다”면서 어떠한 권력도 등에 업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결백을 믿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과거 인기 있는 쇼프로그램 진행자였지만 현재는 모든 활동을 중단한 파올라 살루치는 “그녀가 권력의 힘을 빌어 연예계에 진출한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면서 본인의 과오를 뉘우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살루치가 방송사 이사에게 성상납을 한 후 프로그램을 따냈다는 사실은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정치인과 연예인의 커넥션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무명의 신인이 하루아침에 굵직한 프로그램을 맡거나 갑자기 방송 출연이 잦아진다면 분명히 뒤에서 손을 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여자 연예인 뒤에는 각각 정치인이나 PD, 감독 등이 한 명씩 있다”는 믿지 못할 말도 떠돌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특히 이런 부정 부패는 이탈리아의 국영방송인 RAI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바로 RAI 방송사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지난 1975년부터RAI의 주식 99.5%는 정부의 국영기업인 산업부흥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RAI는 주식회사지만 실제로는 정부, 특히 재무부의 입김 아래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사 인사 발령에 정치인들이 깊게 관여하는 것은 물론 줄을 잘 선 방송사 직원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