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된 이용원...55년 된 가위가 현역, 101년 된 양복점 “지금도 제주도에서 찾아와!”
반면 통념을 깨는 장소가 있습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곳입니다. 기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명소를 찾아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곳에선 시간이 정지 상태입니다. 10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고 싶었습니다.
<일요신문i>는 서울 곳곳에 숨겨진 미래유산을 찾아나섰습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기자는 옛날 그 시절 ‘서울 멋쟁이’를 따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옛날 서울 멋쟁이들은 과연 어디서 멱을 감고 머리에 윤을 냈을까요. 또 제법 근사한 양복은 어디서 어떻게 맞췄을까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원삼탕 전경. 고성준 기자.
기자가 처음 방문한 장소는 ‘원삼탕’입니다. 원삼탕은 1966년 문을 열었습니다. 원삼탕 건물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까닭입니다. 51년간 운영된 원삼탕의 목욕비는 6000원입니다.
한 때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목욕탕으로 명성을 떨쳤던 서울 아현동의 행화탕은 2011년 문을 닫았습니다. 원삼탕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기자는 ‘목욕재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목욕비를 내고 남탕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남탕으로 입장하는 본지 기자 사진.
왼쪽 벽에 목욕용품이 담긴 수납칸이 보이시나요? 다른 목욕탕에선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희귀 아이템입니다. 바로 확대해보겠습니다.
목욕 도구 수납칸 사진.
수건, 타올, 칫솔 등 다양한 세면도구가 가득했습니다. 심지어 지갑도 보였습니다. 동네 ‘단골손님’들을 위한 특별칸입니다. 그만큼 원삼탕의 역사가 오래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 목욕탕의 급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오른편에는 이발관과 라디오가 보였습니다.
이발관과 라디오 사진.
이발사 아저씨는 라디오를 가리키며 “30년이 넘은 라디오에요. 30년 전엔 낮에 TV가 안 나와서 낮에 주로 라디오를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손님들 몸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어요”라고 회고했습니다.
1989년 원삼탕을 인수한 진중길 사장은 “이발사가 35년, 새신사가 33년째 일하고 있어요. 이분들이 목욕탕의 주인들이지요. 참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30년 동안 여기를 떠나지 않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기자는 신발을 옷장에 넣고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습니다.
원삼탕에서 본지 기자가 옷을 벗고 목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날씨는 30도가 훌쩍 넘었습니다. 기자는 옷을 벗어 던지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낡은 샤워기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기 때문에 손님은 두 명뿐이었습니다. 온탕과 열탕은 목욕탕 끝에 있었습니다. 기자는 온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온탕에 들어간 본지 기자.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열치열!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타고 흘렀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했던 목욕탕 기운(?)을 받았습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진중길 사장과 손님들의 허락 하에 사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원삼탕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고 있는 본지 기자.
목욕을 마쳤습니다. 정말 개운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샤워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온탕과 열탕을 오가면서 원삼탕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성우이용원’을 찾았습니다.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입니다. ‘목욕재개’를 했으니 진짜 ’서울 멋쟁이‘로 변신하기 위해 머리를 다듬어야지요!
성우이용원으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 고성준 기자
성우이용원입니다. 낡은 간판이 보이시나요? 성우이용원은 무려 90년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무려 3대째 대를 이어 영업을 이어왔습니다. 성우이용원의 이발사 이남열 씨(67)는 “1927년도에 외할아버지가 면허증을 따서 이발관을 차렸어, 아버지가 6.25 전에 맡았고 내가 58년째야. 서울에서 최고로 오래됐지”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이발사 이남열 씨(좌)와 본지 기자의 대화.
왼편에 보라색 날개가 달린 선풍기가 보이시나요? 이 씨는 “선풍기가 신기해? 그거 40년 밖에 안 됐어. 여기선 보통인데…“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책꽂이에서 꺼낸 대뜸 잡지를 펼치면서 “요즘 젊은이들 머리가 1987년도에서 멈췄어. 젊은이들이 너무 머리에 무례하게 굴고 있어. 그건 멋이 아니야”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과연 이 잡지의 정체는 뭘까요?
1992년도에 발행된 잡지.
세상에 이런 일이! 1992년도에 발행된 잡지였습니다. 성우이용원은 마치 ‘보물상자’ 같았습니다. 선풍기, 잡지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 30년 이상된 골동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이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발 의자에 앉는 순간!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남열 씨가 선풍기를 설치하고 있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하얀색깔의 천이 보이시나요? 이 씨는 “아주 시원해, 에어컨 저리 가라지. 우리 집은 에어컨 안 틀어도 상관없어”라며 발 아래 선풍기를 놓고 천으로 선풍기를 덮었습니다. 발밑에서 올라온 바람이 온몸을 관통했습니다. 이발직전 이 씨는 기묘한 물건을 소개했습니다.
가위 사진.
수납칸에는 가위들이 동전과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가위가 녹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해 동전을 함께 넣은 것입니다. 이 씨는 “이렇게 동전을 넣어 놓으면 훨씬 더 오래 쓰지. 저 가운데 있는 가위는 55년째 쓰고 있어”라며 가위를 골라 기자의 머리카락을 거침없이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가 본지 기자 머리카락에 전분가루를 뿌리고 있다.
뒷머리가락과 구레나룻을 다듬은 이 씨는 갑자기 의문의 가루를 뿌렸습니다. 바로 ‘감자가루’입니다. 이 씨는 “전분가루를 뿌리면 머리 속이 훤히 보여서 이발이 잘 돼. 감자가루는 56년째 쓰고 있어. 이발사들은 원래 활석가루를 썼는데 우리 아버지가 진폐증으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써보다가 감자가루로 바꿨어”라고 했습니다.
본지 기자가 면도하는 사진.
“나는 면도 실력도 기가 막히지!”라는 이 씨의 말에 기자는 면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씨는 “면도칼은 독일제를 58년 정도 썼어. 독일전차를 만들 때 쓰는 쇠를 쓰니까 끝내주지, 100년 넘은 면도칼을 갈아서 쓰니까 누구든 미남으로 변해”라고 했습니다. 날선 면도날이 까슬까슬한 피부 위를 긁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머리감기’였습니다. 기자는 추억의 타일 세면대로 향했습니다. 이 씨는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면서 머리를 벅벅 감겼습니다.
성우이용원에서 본지 기자가 머리를 감고 있다.
머리를 감은 기자는 오랜만에 젤을 발랐습니다. 이 씨는 ”미남 만들어놨는데 기분 좋지?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려와. 아프기 전에는 한달에 평균 400명이나 왔어. 최근에 몸이 아파서 한 달 동안 문을 닫아놓으니까 단골 손님들만 남았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발을 마친 본지 기자.
기자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성우이용원을 나왔습니다. 이제 ‘서울 멋쟁이’가 되기 위한 대망의 마지막 순서가 남았습니다. 100년을 이어온 ‘종로양복점’을 찾아 셔츠를 맞추기로 결심했습니다.
종로양복점의 3대 사장 이경주 씨(72)는 “1916년 친할아버지가 양복점을 여셨어요. 보신각 옆에 차리셨습니다. 1940년대 초에 종로 1가로 옮겼다가 2000년 초에 광화문으로 옮겼습니다. 종로 쪽으로 온지는 6년이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종로양복점으로 향하는 본지기자(좌), 종로양복점 이경주 사장. 고성준 기자
먼저 셔츠를 맞추기 위해 원단을 골라야 했습니다. 기성복 매장이 아닌 곳에서 양복을 맞추는 것은 기자도 처음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원단 색깔 중에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 씨가 기자의 어깨와 목 그리고 가슴 둘레를 재기 시작했습니다.
샘플 원단 사진(좌) 치수를 재는 본지 기자와 이경주 사장.
이 씨는 “백화점은 전부 기계로 해요. 하지만 나는 단추구멍과 안감 등 대부분 손으로 바느질해서 양복을 만듭니다. 기성복하고 견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요즘엔 많이 알려저서 제주도에서도 손님이 와요. 젊은 사람들도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씨는 “셔츠는 오늘 입기 어려워요. 셔츠를 입으려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합니다”라는 아쉬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서울 멋쟁이’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셔츠를 당장 입을 수 없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여행을 보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