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이고픈 욕망에 불을 당겼다
▲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한 ‘메이드 카페’에서 하녀 복장의 여종업원들이 분주히 서빙하고 있다. ‘메이드 카페’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일본 전역으로,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그러나 오타쿠가 주인공인 소설 <전차남>의 큰 유행과 함께 오타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달라지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오타쿠 비즈니스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사람들과 자신의 취미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오타쿠들의 소비 패턴이 맞물려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현실의 여성이 아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캐릭터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오타쿠들은 ‘메이드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유행을 넘어 사업아이템이 되고 있는 일본의 다양한 메이드 비즈니스에 대해 알아봤다.
‘메이드 비즈니스’란 말 그대로 하녀의 복장을 한 귀여운 여성들이 각종 서비스를 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유행은 오타쿠의 성지(聖地)라고도 불리는 아키하바라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메이드 붐’에 편승이라도 하듯이 각양각색의 새로운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아키하바라 탐방의 기초 코스는 ‘메이드 카페’다. 많은 메이드 카페 중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홈카페’라는 곳이다. 카페 안은 밝게 꾸며져 있어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다. 안으로 들어가면 귀여운 하녀 복장을 한 메이드가 “주인님, 다녀오셨어요?”라며 손님을 맞이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시키면 메이드가 입맛에 맞게 커피에 크림과 설탕까지 넣어준다. 그야말로 싹싹하게 주인을 모시는 하녀의 모습이다.
인기 메이드에게는 늘 찾아오는 고정 팬이 있을 정도니 아이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실제로 이 카페의 11명의 메이드들이 ‘메이돌(메이드와 아이돌의 합성어)’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이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많아 아르바이트 경쟁률이 무려 80 대 1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메이드와 더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지고 싶다면 ‘메이드 게임카페’로 가면 된다. 일반 메이드 카페에서 손님들은 주로 메이드를 ‘감상’하거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메이드와 함께 게임을 하며 친근해진 느낌을 맛볼 수 있다.
▲ 메이드 윤락업소 이미지(오른쪽)와 메이드 바. ‘메이드 비즈니스’는 카페는 물론 게임카페 발마사지 업소 술집 고깃집 등에도 도입되고 있다. | ||
날이 저문 후에는 저녁 식사를 하러 ‘코스프레 고깃집’으로 간다. 코스프레 고깃집은 원래 기발한 상술로 유명한 오사카에서 먼저 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도쿄에 진출하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아키하바라에서 가까운 칸다에 있다.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메이드나 코스프레 복장을 지정할 수 있다. 코스프레 의상은 40여 종류가 있지만 역시 메이드 복장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메이드가 옆에 앉아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를 구워주기 때문에 손님은 이른바 ‘주인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손님의 대부분은 오타쿠가 아닌 일반 회사원들이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술을 한 잔 하고 싶다면 ‘메이드 술집’이 있다. 메이드가 있는 술집이나 바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독특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곳이 많다. 그 중 한 술집에서는 메이드 복장을 한 종업원이 주인님(손님)을 끌어들여 위급한 상황을 연출한다. 손님들은 연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메이드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고 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3일만 메이드 복장을 한 여성들이 서빙을 하는 ‘소극적인’ 메이드 바도 있다. 다른 날과 비교했을 때 주말의 매출은 10% 정도 더 높다고 한다.
다양한 서비스 업종에서 메이드 열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한 슈퍼에서는 주말에만 메이드 복장을 한 종업원들이 일한다. 슈퍼 앞의 간판에는 ‘오타쿠 용어’로 쓴 메이드의 프로필과 함께 ‘매일 주인님께 혼이 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와 같은 스토리까지 적혀 있다.
물론 일본의 섹스 업계라고 메이드 붐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코스프레 윤락업소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특별히 오타쿠만을 겨냥한 ‘메이드 윤락업소’가 늘어난 것이 차이점이다. 일례로 한 윤락업소는 메이드 코스프레를 시작하자마자 매출이 3~4배나 껑충 뛰어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모든 윤락업소가 한몫 잡기 위해 메이드 코스프레를 시작하게 됐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만이 살아남고 있다.
도쿄의 다치카와 시에 있는 한 윤락업소. 이곳의 서비스는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르다. 이 업소에는 메이드 카페가 함께 붙어 있다. 고객은 메이드가 서빙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지명할 수 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곧바로 특별한(?) 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 메이드 마니아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는 셈이다.
메이드 붐에 편승한 비즈니스에는 어두운 일면도 존재한다. 그 중 한 가지가 ‘모금 메이드 사기’다. 길거리에서 모금을 부탁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귀여운 메이드 차림의 여성이 모금함을 들고 있다면 좀 얘기가 다를 것이다. 아키하바라에서도 메이드 차림을 한 여성들이 모금 활동에 나서자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금 활동은 사기였다.
모금 메이드로 일한 적이 있다는 여성에 따르면 주최측은 자선 단체가 아닌 일반 주식회사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메이드 복장을 입히고 순진한 오타쿠들의 돈을 뜯어낸 것이다. 가짜 모금에 나서기 전에 사람들의 질문에 대비하여 대답해야 할 내용을 미리 암기시켰다고 한다. 하루에 30만 엔(약 250만 원)을 모금해온 메이드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오타쿠를 겨냥한 사기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오타쿠와 메이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코스프레를 즐기는 여성들을 노린 사기도 늘어나고 있다.
도쿄에서는 매년 열리는 ‘코스프레 촬영회’는 많은 코스프레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큰 행사다. 자신이 정성들여 제작한 의상과 그에 맞는 분장을 선보이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보려고 몰려드는 인파로 매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런 와중에 코스프레를 한 여성들에게 연예계 관계자라고 접근하는 사기꾼들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방송국과 합작으로 메이드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려고 하는데 오디션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며 꼬드긴다는 것.
연예계 데뷔라는 유혹에 넘어간 여성들은 아무 의심 없이 ‘등록비’로 5만 엔(약 42만 원)을 내지만 그 후로 감감 무소식. 그때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상대방은 잠적해서 모습을 감춘 후라고. 여성이라고 해서 메이드 사기로부터 안전하지는 않은 것이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