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팔다리’ 먼저 묶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 ||
정치권 관계자들은 참여정부를 겨냥한 검찰의 사정몰이가 본궤도에 진입한 만큼 참여정부 실세들과 노 전 대통령 주변에 메가톤급 사정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사정 칼끝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측근 게이트’를 넘어 노 전 대통령까지 위협하고 있는 사정당국의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검찰은 ‘참여정부 게이트’를 규명할 핵심 당사자로 박연차 회장을 지목하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사정당국으로부터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특혜 인수 의혹, 증권선물거래소의 조사무마 의혹 등으로 전 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박 회장은 2005년 2월부터 8월까지 본인 명의와 차명으로 세종증권 주식을 사들인 뒤 같은 해 12월에 되팔아 총 178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기는가 하면 농협의 자회사였던 휴켐스 주식도 차명으로 사들여 40억 원가량의 이득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서 차명거래 사실을 밝혀내고 박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휴켐스 특혜 인수 의혹과 관련해서는 농협 고위층과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박 회장은 2006년 3월 휴켐스 매각공고가 나오자 1777억 원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같은 해 6월 말 응찰 가격보다 322억 원이 적은 1455억 원에 휴켐스 주식 46%를 인수했다. 검찰은 이 인수액이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2위 업체가 제시한 금액보다 70억 원이 적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박 회장과 농협 고위층 간의 검은 커넥션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과 국세청은 박 회장이 휴켐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 포괄적인 감사의 표시로 수십억 원을 건넨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해시 봉하마을 전경(위 사진)과 11월 28일 박연차 회장이 운영하는 (주)태광실업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1월 28일 박 회장 자택과 회사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조만간 박 회장을 소환해 관련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박 회장에 대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돌입하자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은 초긴장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을 20여 년간 뒷바라지해온 오랜 후원자로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문제 등 재산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구설수에 오를 정도로 핵심 측근으로 통한다. 검찰은 그동안 박 회장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각종 비리 사건에 대해 전 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해 왔다. 따라서 박 회장의 비리 혐의가 입증될 경우 노 전 대통령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특히 박 회장이 해외에서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는 수백억 원대 비자금의 흐름과 용처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방침이어서 박 회장 비리 사건이 자칫 참여정부 비자금 수사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오랫동안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해 왔고 참여정부 일부 실세들에게도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만큼 박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시점을 신호탄으로 참여정부의 비자금 수사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도 참여정부 게이트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농협이 세종증권을 매입할 당시 농림부 쪽에 로비를 한 흔적을 포착하고 농협의 증권사 인수를 최종 결정한 농림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농협은 2003년 11월까지 증권사를 직접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시중 증권사를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뒤 대상 기업으로 세종증권과 SK증권을 놓고 저울질에 돌입했다.
당시 최종 승인권자인 농림부 내에서는 ‘인수 불가’ 기류가 강하게 조성됐지만 2006년 1월 농림부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승인했고, 1월 31일 농협이 세종증권 주식 47%를 1100억 원에 매입하면서 인수가 최종 결정된 바 있다. 당시 농림부 장관은 올해 6월 작고한 박흥수 전 장관이었고 농협중앙회장은 정대근 전 회장(수감 중)이었다. 두 사람은 사석에서 반말을 할 정도로 막역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장관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노건평 씨와도 잘 알고 지냈던 것으로 드러나 노 씨가 또 다른 역할을 했는지 여부도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농림부가 ‘인수 불가’ 기류에서 ‘승인’ 입장으로 선회한 배경에 정 전 회장과 농협 측이 농림부 최고위층이나 여권 실세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농협의 증권사 인수는 옛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등 다른 정부기관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농협 측의 로비가 이들 정부기관 최고위층 인사에게까지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가 그야말로 ‘참여정부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 (왼쪽부터) 박연차, 정화삼, 이강철. | ||
검찰은 지난 10월 사업가 조 아무개 씨로부터 “이 전 수석에게 2004년 총선과 2005년 보궐선거 출마시 선거자금으로 2억 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이 돈을 이 전 수석의 자금관리인 역할을 했던 노 아무개 씨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노 씨는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전 수석의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이 전 수석이 대구지역의 수억 원대 KTF 옥외광고권을 자신의 조카에게 주도록 청탁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들병원 이상호 이사장의 부인인 김수경 우리들생명과학 대표는 계열사들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10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이 참여정부 실세에 전달됐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남편인 이상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집도하는 등 노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이미 검찰 수사를 받고 있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참여정부 인사들 외에도 386세대 정치인 등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 인사들이 대거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소문만 무성했던 ‘참여정부 게이트’가 조만간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사정 칼끝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르지는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청와대 민정팀을 정점으로 한 사정당국이 오래전부터 참여정부 비리 사건을 전 방위적으로 파헤쳐 온 만큼 사정 플랜 정점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참여정부를 겨냥한 사정몰이가 본격화되자 친노그룹이 ‘기획 사정’ ‘노무현 죽이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하고 있는 사정당국의 서슬 퍼런 칼날이 ‘게이트’를 넘어 노 전 대통령까지 위협하게 될지 여의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