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과제 중 고작 29개…경제사령탑 기재부 ‘볼멘소리’
김진표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정과제 보고대회를 갖고 문재인 정부 5년의 정책 방향을 담은 ‘5대 국정목표’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5대 국정목표의 첫머리에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가 올랐고, 경제 정책을 담은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두 번째 목표에 위치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5대 국정기조 중 첫 번째로 ‘경제 부흥’이 꼽히며 가장 첫머리에 놓였던 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 것이다. 최순실 사건과 촛불 시위, 문재인 대통령 대선 승리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국정 순위 변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부처들은 100대 국정과제에서마저 소외되면서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시 발표한 국정과제 중 ‘경제부흥’에 속한 국정과제는 42개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더불어 잘사는 경제’에 포함된 국정과제는 26개에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는 경제부처가 책임진 과제가 큰 폭으로 줄었다. 사진=청와대 제공
게다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경제부처가 책임진 과제는 더욱 큰 폭으로 줄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부처가 맡은 과제는 29개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들 경제부처가 책임진 국정과제가 53개였다.
이에 반해 고용노동부나 복지부 등 다른 부처들이 맡은 국정과제 숫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통일부의 국정과제는 박근혜 정부 당시 3개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5개로 늘었다.
경제부처 가운데에서는 경제 사령탑을 맡는 기획재정부의 위축이 눈에 띄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가 맡은 국정과제는 9개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4개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심지어 국정과제도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대외 위협요인에 대한 경제의 안전핀 강화’ ‘건전재정 기조 정착’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 등과 같이 거시 경제 전반을 지휘하는 일들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산업 혁신’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 ‘과세형평 제고 및 납세자 친화적 세무행정 구축’처럼 각 정책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약화됐다.
기획재정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핵심 포스트에서도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맡아 5년 경제 청사진을 그린 사람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낸 조원동 수석이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에는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홍 수석은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둔 학현학파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학현학파’는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의 호 ‘학현’을 딴 경제학파로, 효율보다 형편,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된 재정기획관은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맡으면서 예산과 재정을 맡은 기획재정부의 힘은 더욱 빠질 전망이다. 재정기획관은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운용과 관련한 예산 운용 및 국가 재정 업무를 책임진다. 박 재정기획관 임명은 청와대가 기획재정부를 제쳐두고 직접 예산과 재정관리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최근 벌어진 증세 논란에서도 기획재정부의 말발은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발표 하루 뒤인 20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더 나은 복지를 하려면 국민들에게 소득세를 좀 더 부담해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해야 할 것 같다”며 “해내지도 못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이런 얘기 말고 소득세율 조정 등 증세 문제를 갖고 정직하게 얘기하고 국민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세와 법인세 문제가 제기됐는데, 재정당국에는 민감한 문제”라며 “재정 당국이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진화를 했다.
그러나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이 증세 기조를 확정하면서 김 부총리의 말은 힘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이제 (증세를) 확정해야 할 시기”라며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고 밝혀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기획재정부 일각에서는 핵심 업무인 예산과 재정에 청와대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다른 부처들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장악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