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15 특별사면으로 출소해 심경을 밝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에 든 성경이 눈에 띈다. 사진=임준선 기자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만남은 32년 전인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과정 중이었다. 노 관장은 1980년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일부에서는 노 관장이 ‘쿠데타 주역의 딸’이라는 질타가 괴로워 국내에서 학교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으로 떠난 노 관장은 윌리엄앤드메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이에 두 사람은 처음에는 대기업 회장의 장남과 정권 최고 실세이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람의 딸로 만난 것이 아니라 같은 대학원 경제학 전공 선후배 사이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머나먼 타국에서 두 사람이 서로 아무 정보도 없이 개인적인 사이로 만났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테니스 등을 함께 하며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에게 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대기업 총수의 장남, 다른 한 사람은 곧 대통령 취임이 유력한 최고 권력자의 딸로 ‘정략결혼’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은 “본인들의 뜻”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고 최종현 회장은 “대통령이어서 사돈을 맺자고 했던 것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굳이 사돈을 맺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며 “배우자 선택은 당사자 스스로 하는 것이지 자식들을 정략의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결국 최태원-노소영 커플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지 7개월 만인 1988년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고 최종현 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SK그룹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8~1993년을 중심으로 전후 몇 년간 급속도로 성장했다. SK그룹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는 데는 이 기간의 성장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허가,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의 과정은 ‘살아 있는 권력의 사위’이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SK는 지난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면서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1992년 6월 대한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이동전화 부문 사업허가를 신청, 두 달 후인 8월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현직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자진 반납했다. 대신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현 SK텔레콤으로 이어왔다. SK그룹 성장사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SK그룹의 승승장구와는 달리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생활은 결혼 초기부터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9년 장녀 윤정 씨, 1991년 차녀 민정 씨, 1995년 장남 인근 씨를 차례로 출산하며 겉으론 금실을 자랑했지만, 두 사람 주변에서는 늘 불화설이 맴돌았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일요신문 DB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파경 조짐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최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12년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별거 상태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며 사실상 이혼 절차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3년 1월에는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한 이혼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소장에서 최 회장은 “결혼 초부터 성장 배경의 차이, 성격과 문화 차이, 종교의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고 토로했다.
최 회장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 여인을 만난 것도 이혼을 결심하게 된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2009년부터 노 관장과 별거에 들어간 최 회장은 2010년 한 여인을 만났고 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얻자 이혼 소송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 그러나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하기 직전 법정구속되면서, 최 회장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채 오랜 영어의 생활로 들어갔다.
소송 제기가 무산된 지 약 3년 만인 최근 최 회장은 또 다시 노 관장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8·15 특별사면을 받은 지 불과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법적 절차가 아닌 언론 공개 방식을 택했다.
최 회장은 당시 한 일간지에 보낸 편지에서 “항간의 소문대로 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성격 차이 때문에,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 때문에, 저와 노 관장은 10년이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며 “그러던 중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고, 수년 전 저와 그 사람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제 잘못으로 만인의 축복은 받지 못하게 돼버렸지만, 적어도 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노소영 관장은 그동안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전했고, 두 사람의 이혼은 2년 가까이 미뤄져 왔다. 그러던 중 이번에 최 회장이 이혼조정 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한편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관장을 상대로 지난 19일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조정 소장을 접수했다. 최 회장이 제출한 사건은 가사12단독 이은정 판사에 배당됐지만, 아직 첫 조정기일은 잡히지 않았다.
이번 조정에는 이혼만 신청됐고 재산분할은 포함되지 않았다. 재산분할은 노소영 관장이 이혼에 동의하고, 반소를 제기해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노 관장이 이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조정 절차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정에 실패하면 두 사람은 이혼 소송에 들어가게 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