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감금한 납치범이 ‘아빠처럼 다정’?
▲ 빈 경찰이 나타샤 캄푸쉬를 납치한 볼프강 프리클로필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클로필은 나타샤의 탈출 직후 자살했다. 로이터/뉴시스 | ||
이번 납치 사건은 “흉악한 범죄는 다른 도시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자부하던 빈 시민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욱이 소녀가 감금되어 있던 주택이 빈 근교의 조용한 마을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8년 만에 비로소 햇빛을 본 소녀는 현재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 상태와 정신 상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론에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채 꼭꼭 숨어 지내고 있다.
올해 열여덟 살인 나타샤 캄푸쉬가 실종된 것은 지난 1998년 2월, 열 살 때였다. 당시 평소처럼 등굣길에 올랐던 캄푸쉬는 하지만 저녁이 다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은 그렇게 생사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같은 반 친구였다. 친구는 경찰에 캄푸쉬가 낯선 흰색 밴 승용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으며, 이에 경찰은 즉시 대대적으로 흰색 밴 승용차 소유주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000여 대의 비슷한 차종을 수색했지만 아무곳에서도 캄푸쉬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길 8년. 캄푸쉬의 부모는 백방으로 소녀를 찾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혹시 시체라도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강바닥에서부터 산속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어느 곳에서도 딸아이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자란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캄푸쉬의 부모 역시 자신들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찰로부터 “자신이 나타샤 캄푸쉬라고 주장하는 소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한 캄푸쉬 부모는 즉시 경찰서로 향했고, 이어 꿈에도 그리던 딸을 품에 안게 됐다.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캄푸쉬 부모는 자신들의 딸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며, 캄푸쉬 역시 부모의 얼굴을 대번에 알아본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면 캄푸쉬는 왜 8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걸까. 여기에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유괴범에 의해 붙잡힌 후 8년을 지하실에 갇혀 지냈던 까닭이었다.
당시 캄푸쉬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곳은 빈 북동쪽에 위치한 슈트라스호프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새로 주택가를 비틀거리면서 걷는 수상한 소녀를 목격한 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던 것.
이어 경찰서에서 “내가 바로 8년 전 실종되었던 나타샤 캄푸쉬다”고 주장한 그녀는 경찰에게 자신이 감금되어 있던 집 주소를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이에 경찰은 즉시 소녀가 일러준 집주소를 찾아가 급습했고,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2층 주택이 사실은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실종 당시의 나타샤(왼쪽), 컴퓨터로 추정한 현재 모습. | ||
이곳이 바로 캄푸쉬가 8년 동안 갇혀 지내던 지하실 방이었다. 1.5평 정도의 이 작은 공간에는 없는 게 없었다. 침대와 책장, 양변기, 그리고 세면대도 있었다. 또한 라디오와 TV도 있었다. 하지만 창문이 없고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집이 캄푸쉬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불과 16㎞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결과적으로 캄푸쉬 부모는 지척에 두고도 딸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를 납치한 범인은 볼프강 프리클로필(44)이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IT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녀가 탈출한 즉시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납치 동기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그가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캄푸쉬 부모와 아는 사이도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 범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그 역시 지난 1998년 실종 직후 흰색 밴 승용차를 소유한 까닭에 한 차례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유유히 빠져 나갔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렇다면 소녀는 어떻게 해서 탈출에 성공한 걸까. 소녀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통해서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실에서 보냈지만 가끔 납치범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집안일을 거들곤 했던 소녀는 이날도 평소처럼 정원에 나와 세차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납치범의 감시 때문에 도망을 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 나타샤가 감금되어 있던 지하실 내부. 열 살 때 이곳에 들어온 나타샤는 열여덟 살이 돼서야 밖으로 나가게 됐다. 로이터/뉴시스 | ||
8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냐는 질문에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했다. 심지어 공부도 했고, 글도 완벽하게 깨우쳤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납치범 프리클로필은 그녀를 학대하거나 고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빠처럼 다정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거의 매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소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모두 사다 주었다. 책을 사다 주거나 글을 읽고 쓰는 법도 직접 가르쳤으며, 심지어 산수도 가르쳐 주었다. 또한 TV와 라디오를 통해 필요한 지식을 쌓았던 소녀는 발견 당시에도 매우 영리하고 총명했으며, 구사하는 어휘력도 훌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캄푸쉬는 자신의 지난 8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소녀는 “내가 청소년 시절을 평범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게 보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담배나 술을 배우지 않을 수 있었고, 또 나쁜 친구들을 사귈 위험이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납치범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울음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항간에서는 소녀가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지만 정확한 바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가급적 언론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는 캄푸쉬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면서 당분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겠노라고 밝혔다.
하지만 항간에서는 그녀가 지하실에서 쓴 일기가 앞으로 출간될 경우 대박을 터트리지 않겠느냐며 호들갑을 떨거나 그녀가 성적 학대를 당했느니 안 당했느니 하는 추측으로 연일 시끄럽기만 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