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리면 칼 맞는다?
정치권 주변에선 박 회장의 정치지향적 성격과 승부사 기질에 미뤄 자신의 위기를 앞두고 법정투쟁 방안과 함께 구명로비 등 정치적 해결 방법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포함한 초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하고 검찰 수사 및 법정 투쟁에 대비하고 있다. 박 회장의 변호인단 중에는 김앤장 소속의 박상길 전 부산고검장이 눈길을 끈다. 박 전 고검장은 임채진 검찰총장과 사법시험 동기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과 중수부장 등 검찰 특수수사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검찰 내부에 막강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12월 10일 검찰에 소환된 박 회장이 자신과 관련된 각종 의혹 가운데 일부 탈세 및 정 전 농협회장에 대한 금품 제공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던 것도 변호인단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은 자신의 변호인단과 신구 정권 실세들을 통해 전 방위적인 구명로비를 적극 전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12월 12일 구속되면서 1차 구명 로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을 상대로 지속적인 구명 로비를 펼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회장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살생부’를 작성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3∼2004년께부터 작년까지 박 회장이 매일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명목으로 만나 회사 돈으로 얼마를 썼는지 등을 정리해 제출할 것을 박 회장과 태광실업에 요구한 바 있다. 국세청의 요구에 따라 태광실업 측은 박 회장의 개인수첩에 적힌 메모와 비서실의 스케줄, 법인카드 영수증 등 회사 돈 지출명세를 근거로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했고, 이 리스트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태광실업 측이 ‘박연차 리스트’로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을 여기에 포함시키진 않았겠지만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히든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별도의 ‘살생부’를 작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힘나오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은 자신이 궁지에 몰린 뒤 친노그룹 등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나 몰라라’며 거리두기를 시도하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박 회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앙금을 폭발시킬 경우 살생부 실체가 하나둘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