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벌리힐스급 초호화판… ‘자유’는 없다해
▲ 중국 최고 부촌으로 떠오른 ‘화시’ 전경. | ||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빌라 단지를 돌아보면 마치 유럽이나 미국의 교외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인구 6만 명의 이 마을에는 서양 건축양식을 본뜬 이 동일한 형태의 건물들은 모두 150채가 있는데 이곳에는 이 마을의 토박이들 1500명이 살고 있다. 언뜻 둘러만 봐도 중국의 다른 시골 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 ‘부자 마을’은 현재 ‘그들만의 제국’을 형성하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이 마을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적절히 조화된 성공적인 모범 마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동시에 세습 권력에 의해 통치되는 ‘독재자 마을’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B-29호에 살고 있는 쑨빈 씨(64). 과거 쌀농사를 지었던 그는 현재 농사를 그만두고 아들 내외와 손자들과 함께 풍요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150평 빌라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갑부들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화롭다. 침실만 다섯 개요, 홍콩제 최고급 가죽 소파가 구비된 넓은 거실도 세 개나 있다. 거기에다가 온 가족이 모여 즐기는 포커룸도 있고, 러닝머신 등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된 피트니스 룸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부유한 생활을 누리는 마을 주민이 비단 쑨빈 씨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마을의 150가구 전체가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모두 이와 동일한 생활 수준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가 없는 집은 단 한 곳도 없다. 마을의 행정당국이 기본적으로 자동차 한 대씩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폴크스바겐, 시트로엥, 뷰익 등 외제 승용차를 받았으며 간혹 자동차를 세 대까지 보유하고 있는 집도 있다.
그것도 모자라 기름값도 모두 마을로부터 공짜로 받고 있다니 놀랄 일. 또한 집안에서 사용하는 전기료 역시 공짜로 사용하긴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중국인들이 이곳을 ‘지상낙원’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그렇다면 과거 쌀농사를 지으면서 하루 끼니를 걱정했던 이곳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부를 누리게 된 걸까.
그 답을 찾고자 현재 중국 전역에서는 이 마을로 사찰단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매년 이곳을 찾는 관료들이나 일반인들은 120만 명. 이들은 모두 빌라 단지를 둘러 보거나 공장을 견학하거나 혹은 주민들의 가정을 방문해서는 이들의 생활을 꼼꼼히 살펴보고 간다.
이 마을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을 꼽자면 우선 일찌감치 농업에서 손을 떼고 모든 주민들이 제조업으로 전환했다는 데 있었다. 지난 1970년대 말 “농부가 농사를 지어야지 무슨 공장이냐”라는 주변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공장을 짓기 시작한 주민들은 현재 80개의 공장을 공동 소유하고 있는 부자 마을이 됐다. 공산주의에서 추구하는 공동체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주된 산업은 섬유 및 철강업. 이 중 한 철강공장은 동파이프, 케이블, 알루미늄 창틀 등 연간 1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튼튼한 기업이 됐다.
또한 이 마을은 자체 브랜드도 여럿 보유하고 있다. 가령 자체적으로 담배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 마을의 이름을 딴 담배 브랜드도 있으며, 또한 와인 및 주류 브랜드도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중국 전역으로 팔려나가는 것은 물론이다.
▲ 주민 쑨빈 씨 집 내부. | ||
사실 이들의 화려한 성공신화 뒤에는 이 마을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모든 부가 사실 이 사람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때문에 심지어 이 지역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의류 브랜드 역시 ‘런바오’다.
우런바오(79)라는 이름의 전직 촌서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마오쩌둥 버금 가는 존경을 받고 있는 그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 대신 그의 아들 우시엔이 자리를 물려 받아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주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막강하다. ‘천박한 자본주의자’라는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처음 마을에 공장을 세운 것도 그였으며, 공장을 지은 다음 ‘농민들을 일터로 되돌려 보내라’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공장 수를 늘린 것도 그였다.
물론 지금 그는 ‘주민의 영웅’이 됐다. 그가 발간한 지침서는 주민들 거실에 마치 필독서처럼 꽂혀 있으며, 주민들은 모두 “우리 마을에 행복을 가져다 주신 분이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면서도 간단하다. “나에겐 단 하나의 목표만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잘 살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지도 원리 역시 간단하다. “주민들의 인생 목표는 다섯 가지다. 돈, 자동차, 집, 아들, 존경. 그것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바라던 대로 모든 주민들이 다 부자가 됐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온 중국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살게 됐다 하더라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이 사회가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주 노동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6만 명의 인구 중 토착민 1500명과 뒤늦게 흡수된 이웃마을 주민들을 제외한 나머지 5만 명은 모두 다른 마을에서 이주해온 외지인들이다.
이들의 생활은 이곳 토착민들과는 전혀 다르다. ‘화시 드림’을 품고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이들은 이곳에서는 ‘하층계급’에 속하며, ‘지상낙원’은 여전히 이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한 달 월급은 최고 약 150달러(약 14만 원).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못하며, 또한 돈은 벌 수 있지만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솔직히 이주 노동자들의 연봉 역시 토착민들의 연봉(1500달러(약 150만 원)과 별반 차이는 없다. 이들의 소득 격차는 토착민들이 받는 연간 보너스 1만 달러(약 930만 원)와 매년 행정당국으로부터 받는 주식 배당금(2만 5000달러, 약 2300만 원)에서 비롯된다.
이런 차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마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다. 다른 마을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게는 25배가량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성 이주 노동자는 “한 달에 1000위안(약 3만 원)을 벌고 있다. 고향에서 버는 것보다 배는 많은 액수다. 하지만 그만큼 삶이 고단하다. 한 달에 30일을 꼬박 일해야 하루를 쉴 수 있다”고 푸념한다.
▲ ‘화시’의 영웅 우런바오와 그의 아들 우시엔 | ||
또한 젊은 노동자들의 불만도 많다. 술집이나 유흥업소가 거의 전무한데다 있다 해도 대부분 저녁 일찌감치 문을 닫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은 정말 따분하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간혹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화시 주민’이라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다. 단 우런바오와 친분이 있거나 그의 눈에 잘 보였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공식적으로 인정한 ‘화시 주민’이 되면 토착민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과 권리를 갖는 것은 물론, 주식도 보유할 수 있다. 단숨에 부자 대열에 합류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자격 조건이나 심사는 행정당국의 간부들이 실시하며, 최대 조건은 “화시를 진심으로 아끼고 애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 마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 이 마을이 ‘독재자 마을’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우런바오의 아들이 촌서기직을 세습한 것뿐만 아니라 이들 부자가 마을 전체를 지배하듯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 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 분명히 잘 살고 있는 것은 틀림 없지만 그만큼 여가 시간이 적고 또한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도 좀처럼 없다. 주민들이 보유한 자산 중 이들이 실제 현금으로 갖고 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연간 보너스의 80%와 주식 배당금의 95%는 반드시 지역 사회에 재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관료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의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마을에 속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혹시 모든 것이 보여주기 위한 쇼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실례로 쑨 씨네 거실에 있는 대형 평면 TV에는 이상하게도 코드가 꽂혀 있지 않고, 심지어 가족 중 누구도 콘센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또한 피아노는 있지만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피트니스 룸의 러닝머신 역시 아무도 작동법을 모른다.
침실이나 거실이 너무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혹시 진짜 살고 있는 집은 다른 곳이고 이 집은 대외 홍보용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중국인들의 모범이자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은 틀림 없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현재 250만 달러(약 23억 원)짜리 대형 시계탑이 건설 중에 있으며, 이 시계탑은 17층짜리 호텔 건물에 이어 이곳의 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조형물로 우뚝 솟을 전망이다.
오늘도 역시 이 마을을 견학 온 수많은 사람들은 안내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화시 주민들의 부유한 생활을 잘 눈여겨 보세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의 경험담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또 우런바오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말이죠.”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