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웅열 회장 개인회사 ‘내부 시스템’에 구멍 숭숭
코오롱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 코오롱베니트는 하청업체 원천기술 표절과 임직원 비리 혐의로 내부감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코오롱베니트 홈페이지
사정당국에 따르면 최근 코오롱베니트의 영업팀장 손 아무개 씨가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손 씨는 2007년 2월~2013년 2월 소프트웨어 회사 Y 업체에 허위 물품대금 4억 1200만 원을 지급해 업무상 횡령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손 씨는 같은 업체에 용역비와 장비 임대비 명목으로 허위 대금 4억여 원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일은 불과 몇 달 전에도 일어났다. 지난 2월 코오롱베니트의 전 영업팀장 김 아무개 씨는 S 업체 대표 김 아무개 씨와 공모해 코오롱베니트 재고물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현재 김 전 팀장은 S 업체 대표 김 씨에게 중간 유통업체 선정 대가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파트너사와 함께 진행하는 업무가 대부분인 IT서비스 기업 특성상 거래 과정에서 부당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코오롱베니트 같은 IT 서비스 기업들은 대개 보안, 클라우드, 시스템 관리, 스토리지 등을 담당하는 전문 소프트웨어(SW) 협력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폭넓은 기술을 요구하는 IT 서비스 특성상 모든 업무를 직접 하기보다 다른 업체와 협력하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Y 업체와 S 업체 모두 코오롱베니트의 비즈니스 협력사다.
한 대기업 IT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IT 서비스 기업은 협력사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많은 데다 핵심적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며 “IT 서비스는 인건비의 비중이 크고 일부 기업은 IT 장비를 직접 유통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부정한 거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코오롱베니트의 경우 횡령 규모가 크고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점에서 단순 개인 비리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코오롱베니트의 사정을 잘 아는 업계 한 관계자는 “영업팀장이 횡령하는 경우는 고객이 리베이트를 달라고 할 때인데 이런 일은 이쪽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돈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갔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또 “영업 비자금 조성은 회사에서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일종의 ‘꼬리 자르기’일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관련 문제가 잇달아 발생한다는 것은 내부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코오롱베니트는 관리 시스템이 철저해야 할 대기업 계열사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코오롱은 ‘윤리경영’ 기조 아래 ‘감사협의회’와 ‘사이버 감사팀’을 두고 있다. 감사협의회는 계열사의 일상감사 체계를 정착시키고, 윤리경영에 대한 온·오프라인 교육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 감사팀은 사이버 상담 및 제보를 활성화하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동시 보안 프로그램 구축 등의 업무를 한다. 이 같은 별도 조직이 있음에도 지난 수 년간 부정행위가 이어져온 것이다.
앞의 IT 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협력업체와 접촉이 많아도 회계감사가 철저하면 배임·횡령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과거 코오롱베니트와 거래한 한 업체 대표는 “통제가 안 되는 회사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문제의 심각성이 상부에 제대로 보고되는지도 의문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대기업 IT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은 과거와 달리 수직적인 감시보다 수평적인 감시가 활발해지면서 부정한 거래가 줄어들었다고 평한다. 다른 대기업 IT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횡령으로 회사에서 축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요즘에는 거의 없다”며 “감시보다 신고제를 강화시키는 분위기이고, 하다못해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가벼운 성적 농담도 신고되는데 횡령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앞의 대기업 IT서비스업체 관계자는 “부정거래에 대한 온·오프라인 교육을 자주 한다”며 “심지어 협력업체랑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프로젝트 업무를 할 때도 분리해서 앉힐 정도”라고 말했다.
코오롱베니트 내부에서 잇달아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이미지에 주는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에게 코오롱베니트는 특별한 존재다. 이 회장이 현재 보유한 코오롱베니트 지분은 49%다. 설립 당시 지분 10%에서 5배가량 늘어났다. 나머지 지분 51%는 ㈜코오롱이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이 ㈜코오롱의 지분 47%를 가진 대주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코오롱베니트는 이 회장 개인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코오롱베니트는 내부거래로 성장한 회사다. 1999년 ‘라이거시스템즈’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코오롱베니트는 코오롱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로 2005년 베니트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최대주주였던 ㈜한국컴퓨터어소시에이트가 주식을 전량 양도하면서 코오롱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2007년 2월 지금의 코오롱베니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코오롱그룹 계열사들의 정보시스템 업무를 맡은 코오롱베니트의 내부거래 비중은 2006년 2%까지 떨어졌지만 이웅열 회장이 지분을 확보한 이후 무려 70%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내부거래에 힘입어 2000년 530억 원이었던 코오롱베니트의 연매출은 지난해 3973억 원으로 불어났다.
코오롱베니트의 성장에 따라 이웅열 회장은 매년 수억 원의 배당금을 챙겨갔다. 코오롱베니트는 지난해 주당 400원을 배당한 데 이어 올해는 주당 500원을 배당을 했다.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배당함으로써 오너 일가에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처럼 내부 관리 소홀로 좋지 않은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경우 코오롱베니트의 개인 최대주주인 이 회장이 입는 이미지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코오롱베니트 관계자는 “사건 모두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