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은 대도서관…색깔있는 스트리머가 되고 싶어요”
전 프로게이머라는 경력과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기에 사진 촬영에서도 어색함이 없었다. 고성준 기자
[일요신문]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도 불리는 다중채널네트워크 서비스(MCN)의 전성시대입니다. 강남, 홍대 인근 등 번화가 길거리에서도 셀카봉으로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명 스트리머의 수입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억 단위 수익을 올린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고급 승용차를 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이에 <일요신문>에서는 인기 스트리머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프로게이머이자 인기 스트리머 이성은의 이야기입니다. <일요신문>은 이성은과 지난 10일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부천에서 만나봤습니다.
지난 7월 30일 1998년 발매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20년을 맞아 ‘리마스터’버전을 국내에서 공개 했습니다. 전 세계 유일의 선공개였습니다. 왕년에 마우스 좀 만지던 ‘아재’부터 스타를 모르던 청소년까지 스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스타의 진화는 스트리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임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자 관련 방송을 보려는 사람들도 몰렸습니다. 스타는 20년이 된 게임이지만 여전히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주요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를 플레이하는 이성은. 게임화면 아래에 자신의 얼굴을 꼭 넣고 플레이한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세월이 흐르며 스타 프로리그 등 대규모 대회가 사라졌고 프로게임단도 해체가 됐습니다. 직장을 잃은 게이머들은 인터넷 방송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프리카 대통령’으로 불리는 ‘철구’도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출신입니다. 대표 개인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게임방송 스트리머 순위에서 1, 2위를 전 프로게이머인 이영호와 김택용이 나란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 스스로가 평가하는 인기요인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서비스인 유튜브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스타를 다루는 스트리머 중에서는 채널 ‘흑운장TV’를 운영 중인 전 프로게이머 이성은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입니다. 채널 구독자 수에서도 10만 명 가까이를 기록하며 5만 6000 명의 철구보다도 큰 차이로 앞서고 있습니다.
수년간 ‘텃밭’을 일궈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성은은 인터넷 방송에 뛰어든 지 1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는 과연 어떻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이성은은 스스로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제가 잘나서 잘되는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라면서도 “확실한 부분은 제 방송은 차별화가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차별화는 무엇일까요. 이성은은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 놓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개그맨, 걸그룹, 페이스북 스타, 타 스트리머 등 다양한 인물과 합동 방송도 진행한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첫 번째는 규칙적인 방송시간이었습니다.
“고정된 시간, 고정된 요일에 항상 방송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저는 지금 수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저녁 8시부터 방송을 시작하고 있어요. 처음에 제 계획을 듣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어요. 저녁 시간대가 ‘헬 파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유명한 친구들이 그 시간대를 꽉 잡고 있죠. 그래도 제가 ‘메이저’가 되려면 저녁 시간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도전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고정 콘텐츠입니다.
“저는 시리즈로 꾸준히 하는 콘텐츠를 했어요. 다른 방송하는 친구들도 새로운 시도는 해요. 하지만 시청자 반응에 너무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계속 밀고 나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많은 분들이 제 방송을 좋아하시게 됐어요. 대표적으로는 스타의 게임 스토리를 소개하는 ‘스타 읽어주는 남자’ 같은 코너가 있었죠.”
인터넷 방송은 특유의 욕설이나 선정적인 내용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합니다. 가끔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모자이크 화면으로 인터넷 방송이 등장하기도 하죠. 이성은은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야한다는 생각에 욕설이 없는 방송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는데 10월부터 전업으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후발주자다보니 저만의 강점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욕설이 없고 ‘별풍선’ 등 후원을 받았을 때 과도한 반응을 자제하자고 생각했어요. ‘선비 방송’, ‘클린 방송’이죠(웃음).”
동료이기도 하지만 일부 스트리머들을 향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고성준 기자
그러면서 일부 스타크래프트로 방송을 하는 이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더했습니다.
“많은 스타크래프트 스트리머가 생각 없이 편하게 방송하고 있어요. 특히 스타 프로게이머 출신들은. 스타라는 게임이 출시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이제는 팬 층이 구매력이 있거든요. 그냥 앉아서 게임만 해도 ‘별풍선’ 같은 후원이 들어와요. 차별화나 특화된 부분 없이 편하게 하는 사람이 많아요. 실제 팬들도 ‘편하게 돈 번다’고 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리고 별풍선에 매달리는 상황이 나오게 되죠. 별풍선을 과도하게 유도하고 별풍선을 받으면 과도하게 반응하는… 시청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면 자극적인 콘텐츠를 선택하게 되죠. 저는 이런 부분이 싫어서 특화된 아이템을 만들고 특정 팬 층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 그의 롤모델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 길을 따라가길 좋아한다는 이성은. 고성준 기자
“저는 과거부터 무슨 일에서든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 사람을 따라하곤 했는데요, 방송을 시작하면서는 그 롤모델이 대도서관님이었어요. 그분의 그림자를 밟아가고 싶었어요. 제가 방송을 하면서도 그 분 방송을 챙겨봤어요. 얼마 전에는 한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정말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한 20분 동안 말도 못 걸고 보고만 있다가 나중에 제가 먼저 사진찍자고 했죠(웃음).”
대도서관이 현재 롤모델이라는 이성은. 그렇다면 과거엔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했을까요?
“학창시절에는 수학선생님이 되고싶었어요. 경시대회에 나가서 수상도 할 만큼 수학에 흥미도 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만난 수학 선생님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학선생님이 꿈이던 학생은 어떻게 프로게이머의 길로 접어들었을까요. 그는 “원래 모의고사 성적이 1.5 등급 정도(정확한 기억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의심 많은 네티즌의 공격을 매우 경계했습니다)로 나쁘지 않았는데 점수가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어머니께서 ‘이럴 거면 프로게이머나 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진지하게 받아들였죠. 그래서 의견을 말씀드리니 어머니도 함께 고민해 주셨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특이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했어요. 학교를 그만두던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반장도 했었고 그냥 장난치기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딱히 분위기 메이커도 아니었고…”
프로게이머가 돼서는 테란 게이머였던 서지훈을 롤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게임 내에서 같은 종족이기도 했고 당시에 멋있게 느껴졌다고 해요.
# 이성은의 방송 전략
선수시절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그땐 연출된 모습이었다”고 했다. 고성준 기자
하지만 방송은 반전이었습니다. 이성은은 침착한 말투와 자세한 설명으로 시청자를 끌어 들였습니다. 그는 이 같은 반전에 “현역 게이머 시절의 모습은 반 정도는 가공된 이미지에요. 지금도 비슷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남들이 안하는 세레머니, 과감한 인터뷰는 어느 정도 연출된 이미지였어요. 제 원래 모습은 아닌 거죠”라고 했습니다.
그는 ‘클린 방송’, 차분한 진행 이외에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기도 합니다. 누워서 게임하기, 숟가락으로 키보드 누르기 등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놓고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콘텐츠가 좋을지 항상 고민합니다. 예를 들면 리마스터가 공개되기 전에 제작사엔 블리자드 사에서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흘렸어요. 다른 방송하는 친구들은 그걸 그냥 보고 넘겼는데 오히려 프로게이머 출신이 아닌 분들이 그걸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인기를 얻었어요. 이런걸 보면서 단지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남다른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죠.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부분을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제 일을 도와주고 있는 여자친구와 회의도 하고 시청자분들이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하죠.”
이성은의 방송이 인기를 끌며 여자친구도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성은의 여자친구는 유튜브 녹화, 편집, 업로드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성은의 연인이자 가장 큰 조력자 입니다.
“여자친구를 만나고 방송을 하면서 이 친구가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련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닌데 4~5년 동안 유튜브를 즐겨봐서 감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자 친구를 믿었죠. 그래서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영상 편집 등을 맡기려고 제의를 했어요. 더 많은 월급을 챙겨 주겠다고 유혹했죠. 실제 그렇게 줬고요. 여자 친구지만 열정페이로 하는 ‘네 돈이 내 돈’ 같은 마인드는 싫었어요. 구독자가 1명이던 첫 번째 달부터 똑같은 월급을 줬어요. 성과가 좋으면 인센티브도 주고 있어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 편집자 중에서는 거의 최고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순환 구조를 노린 거죠(웃음).”
# 유튜브 채널 구독자 10만, 과연 얼마나 버나?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가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르며 이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데요. 많은 스트리머가 개인 방송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하죠. 이성은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는 게이머 은퇴 이후로 방송 해설에 몸담았고 중국에서 ‘리그오브레전드’ 게임단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방송을 전업으로 하고 있는 현재도 가끔씩 감독 제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저는 E스포츠 현장에 대한 애착도 있고 감독으로 돌아갈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죠”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히 이야기하면 들어오는 제의와 지금 수입 차이도 있으니까 거절하는 부분도 있어요. 제의가 들어오면 제가 다소 큰 금액을 부릅니다. 그러면 협상이 안돼요. 사실 그 정도 자금력이면 저를 안 쓰죠(웃음)”라면서 “저는 지금 제 방송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 발전시킬 자신도 있고요. 큰 금액을 안겨주면서 제 유튜브 계정을 팔라고 해도 지키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수익 비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성은은 유튜브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요. 수익 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창기에는 아프리카에서 나는 수익이 절대적이었어요. 지금은 유튜브가 60~70% 정도 되죠. 전체 수익은 편차가 좀 있지만 유튜브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별풍선 등 후원 수익은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앞으로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 계획도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비밀입니다(웃음). 앞으로 기대해 주세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성은이 방송으로 돈을 벌어서 인천에 40평이 넘는 아파트를 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과연 이는 사실이었을까요. 그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하하 사실과 다릅니다. 지금 여기 부천에서 사는 집이 40평대…월세입니다(웃음). 인천에 아파트가 있긴 한데 22평으로 작은 규모입니다. 인터넷 방송으로 번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요.”
‘인터넷 방송을 해서 40평대 아파트를 샀다’는 소문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고성준 기자
그는 마지막으로 스트리머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모든 스트리머가 돈을 많이 벌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신중히 접근해야죠.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은 꾸준함이에요. 과거와 달리 요즘은 꾸준하고 성실한건 기본이에요. 또 방송 콘셉트가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해요. 아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건 힘들지만 기존에 있던 소재라도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겠죠”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