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내용 비공개 ‘잡음’ 최소화…‘권영진 시장 재선 가도 불똥 튈라’
지난 16일 신창규 대구의료원장의 사표가 받아들여졌다. 신 원장은 18일자로 면직됐다. 지난 6월 8일 신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신 원장의 사표 제출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구시가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9일까지 진행했던 감사 도중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던 탓이었다.
대구시는 신창규 원장이 사직 의사를 밝히자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직은 적절치 않다”며 사표 수리를 보류해 왔다. 대구시는 지난달 7일 감사 결과를 토대로 신 원장에게 해임요구를 통보했다. 신 원장은 스스로 그만두더라도 해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4일 즉각 이의를 신청했다. 지방공무원법상 해임된 사람은 3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대구시는 이내 해임 요구를 경고로 감경 처분하며 신 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구체적인 사태 원인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구의료원 노조가 촉구한 두 차례 내부 성명 등에 따르면 비위 의혹이 신 원장의 사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신 원장이 업무추진비와 경조사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고 비판해 왔다. 또한 금연지원센터 지원금을 이용해 특정 인사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고 외유성 출장을 다녔다는 의혹도 나왔다.
노조와 의료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신창규 원장은 업무추진비조로 제공된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 밤 늦은 근무 외 시간과 주말에도 여러 차례 이용했다. 개인 병원과 대한의사협회 인사, 지역 교수 등의 경조사에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또한 관용차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몰았다는 주장도 있다.
연 10억 원 예산을 지원 받는 대구의료원 금연지원센터.
특히 노조 관계자는 금연지원센터 지원금 관련 비위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신창규 원장은 금연지원센터로 배정된 예산을 다른 부서 비용으로 끌어 썼다. 타 부서 특정인에게 업무추진비조로 월 50만 원씩 지원했다. 회계는 금연지원센터의 시간 외 근무수당으로 처리했다.
신창규 원장은 금연지원센터 본부장으로 자신의 친구를 앉힌 뒤 연봉을 1억 원가량 책정했다. 전국적으로 금연지원센터 본부장 연봉은 5000만 원 수준이다. 대구의료원장 출신 안문영 옛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신 원장에게 금연지원센터 본부장 연봉을 전국 수준으로 낮출 것으로 권한 바 있었다. 신 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4월 29일 전국 의료기관 18곳에 금연지원센터 운영 예산으로 연평균 10억 원씩 3년동안 543억 원을 풀었다. 이 예산은 의료기관 예산과 별도로 지원됐다.
대구의료원은 이런 내용을 일부 시인했다. 의료원 관계자는 “밤 늦게 회의를 하거나 주말에 밀린 업무를 하다가 법인카드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경조사비는 환자를 이송하고 연계 치료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봐준 다른 병원 관계자와 의료인을 챙기느라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관용차 역시 출퇴근 및 다른 용도로 사용된 적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의혹은 부인했다. 또한 의료원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의료원 관계자는 “선진국의 금연지원 체계를 배우려 출장을 갔다. 외유성이 아니었다. 또한 금연지원센터 본부장은 제일기획 출신으로 전 직장 수준의 급여에 맞춰 주느라 어쩔 수 없었다. 친구라서 고액 연봉을 지급한 게 아니다”라며 “의료원은 적자폭을 줄이려 각종 의료 사업을 펼쳐 왔다. 그에 맞는 영업비가 필요했지만 업무추진비로 쓸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과정에서 금연지원센터 예산을 일부 끌어다 썼을 뿐”이라고 밝혔다.
대구의료원 내부에 붙은 노조의 성명서.
신창규 원장은 지난달 14일 자격이 되지 않는 3급 인사를 행정처장 직무대리로 임명하려 기습적으로 2급 진급 인사를 시도한 바 있었다. 의료원 감사 관계자가 부적절한 인사위원회 개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서 ‘날치기 인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조는 성명을 두 번 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내홍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돼서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소 대구의료원 노조가 보여준 강경 대응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를 두고 권영진 대구시장 감싸기 아니냐는 눈총도 받고 있다. 이에 발맞춰 대구시 역시 감사 결과와 최초 해임 요구 사유, 경감 처분 이유를 아직까지 밝히지 않았다. 대구시 감사관 관계자는 16일 “관련 법에 따라 두 달 안에는 공개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는 감사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의료원 노조가 내심 권영진 대구시장의 연임을 원해 내년 지방 선거까지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대구시청의 박자를 맞춰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올라 왔다. 권 시장은 지난해 의료원 복지카드 발급에 힘을 실어주는 등 노조와의 사이가 좋다. 지난주 노조는 임시총회에서 자유한국당 입당 원서를 돌리기까지 했다. 이를 두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권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 지역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만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권영진 시장의 유력한 경선 경쟁자로 나온다. 이 최고위원은 자신이 구청장으로 근무했던 대구 동구 쪽에서 경선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는 소문까지 파다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권 시장은 남은 임기 안에 자신의 지지세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야 할 과제를 떠안았다. 희망원 사태로 궁지에 몰렸던 권 시장은 경선까지 모든 잡음은 조용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사태라면 의료원 노조가 외부로 크게 알렸을 텐데 권 시장에게 큰 선물까지 한 번 받았기에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라고 꼬집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