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나무는 귀한 보석함이 되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나무의 소원은 대양을 건너는 커다란 배의 재목으로 쓰이고 싶었습니다. 보석함이 되고 싶던 나무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잘려서 짐승의 사료통이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대양을 건너는 큰 배의 용머리가 되고 싶었던 나무도 낡고 작은 보트의 바닥 판자가 되어 버렸죠.”
우화속의 나무나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았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 자라나면서 저마다의 무지개빛 같은 꿈이 있었다. 스타가 되어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싶고 거대한 조직의 기둥이 되고 싶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점심시간이면 나란히 비슷한 도시락을 먹던 중고등학교시절 우리들은 모두 같은 줄 알았다.
40여 년 전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창회를 하면서 우리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교복이 없어진 나는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동네 친구 집에 갔더니 벽의 옷걸이에 후줄그레하게 구겨진 때 묻은 쟈켓이 걸려있었다. 색이 바래고 천이 닳아서 올이 풀려 나와 있었다. 그래도 양복은 양복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걸 빌려서 걸치고 반창회에 나갔다. 청소년시절 억눌려왔던 욕망이 공식적으로 터지는 날이었다.
술이 풍성하게 나오고 자유를 상징하듯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모인 중에 왕자같이 유난히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다. 조끼까지 갖춘 최고급 양복에 명품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받쳐 입었다. 고등학교시절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모 재벌회장이 가장 귀여워한다는 아들이었다. 금수저인 그와 내가 다르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소심해서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같은 반이면서도 그에게 다가가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뒷골목의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세월의 강을 흘렀다. 어느 날 모임에서 출세한 군대동기를 봤다. 비 내리는 연병장에서 같이 훈련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는 검사장이 되고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어 세상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그의 고급 관용차가 그를 모시기 위해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대기하던 그의 비서가 달려와 그의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는 분명 내 얼굴을 기억을 할 텐데도 모른 체 했다. 대통령을 모시는 보석함이 된 그와 나는 신분의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나오자 최고의 명품양복으로 갈아입었던 금수저 이던 친구는 태평양을 오가면서 해외의 기업들을 인수하는 재벌회장이 되었다. 한국재계의 대표가 된 그는 재벌회장들을 이끌고 대통령이 초청하는 만찬에 참석해 건배하는 모습이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스스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았다. 작은 책상위에 놓인 성경책 한권을 보면서 삼십년 세월을 위로받고 살아왔다고나 할까.
나도 우화에 나오는 보석함이 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큰 사업을 하는 부자도 되고 싶었다. 희망의 말은 던질 수 있지만 그건 태생부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상어가 되고 싶은 피라미의 꿈 정도로 비유하면 맞을까. 불공평한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내 주제에 맞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같은 진흙덩어리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 내신다. 간장종지로 나를 만드셨으면 상의 모퉁이에서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라디오 속의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사료통은 다른 말로 구유라는 말로도 표현하는데 말구유가 되어 버린 그 나무는 아기예수를 담게 된 겁니다. 그리고 조그만 배의 바닥 판자가 된 나무는 예수님이 물가의 보트에 서서 군중에게 설교를 할 때 디디고 서신 바닥이 된 겁니다.”
그 순간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랬다. 보석같은 진리 자체인 성경을 품은 나는 세상의 보석함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주님의 진리를 서툰 글이라도 써서 전하려고 마음먹은 나는 그를 받치고 있는 작은 배의 바닥 판자였다. 나도 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