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가 왜 꽃을 우리 곁에 두었을까
불상 앞에는 나라꽃인 빠다욱빤을 한아름 놓고 불공을 드립니다. 교회 장례식엘 가보니 백합, 노란색 난과 국화, 글라디올러스 등 갖가지 꽃으로 ‘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부잣집에는 부겐빌레아, 제라늄 등을 보란 듯이 마당에 화사하게 키웁니다.
미얀마 문화를 이해하려면 꽃을 알아야 합니다. 춤공연을 가보면 춤이 곧 꽃입니다. 그걸 모르면 재미없습니다. 미얀마의 전통춤은 우아하며 부드럽습니다.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춤을 꽃에 비유합니다. 무용수의 머리는 꽃송이입니다. 두 손은 꽃잎입니다. 몸통은 꽃대를 표현합니다. 몸의 다른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에 꽃대가 흔들립니다. 꽃잎이 세차게 흔들립니다. 꽃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머리와 허리와 두 손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며 율동이 펼쳐집니다. 그 주변에 다른 꽃들도 다가옵니다. 나무들도 있습니다. 가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그게 남자무용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 해피엔딩입니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시골 들녘의 도라지꽃.
손님은 없는데 가보면 늘 새로운 꽃이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붉은 장미, 수선화, 다알리아, 백합, 심지어는 해바라기도 있습니다. 할머니, 저 꽃을 어디서 가져옵니까? 제가 묻습니다. 우리 마당에서. 할머니가 답합니다. 보통 할머니가 아닙니다. 저런 꽃을 마당에서 키우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을 건넵니다.
“할머니, 장미가 어느 나라꽃인 줄 아세요?”
“영국 아닌가? 붉은 줄장미 거기서 많이 키운다던데.”
“맞아요. 그럼 어제 그 다알리아는?” “몰라.”
“멕시코 나라꽃이랍니다.”
“해바라기는요?” 제가 자꾸 묻습니다. “몰라.”
“페루의 나라꽃입니다. 그리스 꽃은 향제비꽃. 캘리포니아주 꽃은 양귀비.”
“그런 꽃도 나라꽃으로 정하나 보네. 근데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제가 돌아다니며 봤으니까요. 할머니는 무슨 꽃을 좋아합니까?”
“도라지꽃. 무리지어 피면 참 보기 좋아. 봄에는 찔레꽃도 좋고. 가을엔 산에 가면 싸리나무꽃도 잔잔하게 이쁘지.”
이렇게 하여 할머니의 ‘한국꽃’과 저의 ‘해외꽃’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보면 할아버지가 옵니다. 그럼 얘기꽃이 지고맙니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남편 따라 시골 바닷가로 왔는데, 남편은 마당에 꽃 심는 거 싫어한답니다. 먹을 걸 심어야지, 웬갖 꽃만 심는다고.
어느날 할머니네 집 마당엘 같이 가보고 제가 놀랐습니다. 그 넓은 마당과 베란다에 정말 꽃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배나무꽃, 복숭아꽃과 같은 나무에서부터 야생화까지. 저 보라색은 하늘매발톱꽃. 저 분홍은 금낭화. 저 노랑은 민들레. 여름이나 가을엔 패랭이꽃, 보라와 흰 도라지꽃을 뒷마당에 키워. 수국 같은 꽃은 키우기에 따라 여러 색깔을 만들 수 있어.
할머니의 꽃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때로는 분갈이를 해서 건네주기도 합니다. 저는 바닷가와 맞붙은 작은 아파트여서 꽃을 기르긴 좀 힘들지만 ‘사부’가 주는 거니까 일단 받아둡니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향수를 달래기 위해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꽃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자카란다가 황홀하다. 연합뉴스
“할머니, 질 때 아름다운 꽃이 뭔지 아세요?”
“….”
“자카란다(Jacaranda)란 꽃이 있는데, 로스앤젤레스 시의 꽃이죠. 거기 시립미술관 앞에 가면 가로수가 그 나무꽃입니다. 지금 5월이면 하늘보다 짙은 보라색 꽃잎이 길가에 떨어지는데 참 아름답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보라꽃인데… 어떤 사람들은 꽃잎을 주어다 투명어항에 띄워놓고 본답니다.”
“더 늙기 전에 한번 보고싶네.”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할머니, 창조주께서 왜 꽃을 우리 곁에 두었을까요?” 제가 좀 심오한 질문을 합니다. “할머니,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살라고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어떻게 꽃보다 아름다워?”
제가 긴 1년을 고향의 파도와 사계절의 꽃과 살며 떠나던 날입니다. 할머니가 사각봉투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꽃씨야. 서울 가면 잘 키워봐. 가끔 꽃 보러 오고. 내가 맘에 들게 키워놓을 테니. 그리고 씨 뿌린다고 다 싹이 트는게 아니야. 2, 3개월 걸리는 것도 있으니까 끈기 있게 참고 기다려야 해.”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