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가능 자리만 10여 곳 거론…친박계 인사들 ‘전전긍긍’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016년 10월 5일 취임사를 하는 모습. 정 이사장은 최근 자진사퇴함으로써 한국거래소 역대 최단명(11개월) 이사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연합뉴스
정 이사장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한국거래소를 떠난다”고 말했다. 2019년 9월까지 임기인 정 이사장은 11개월 동안 재직해 한국거래소 역대 최단명 이사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임기가 2019년 2월까지지만 친박계로 분류되면서 중도 하차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벌써 이 회장 후임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돌고 있다.
이들의 퇴진을 계기로 금융권에서는 인물 교체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한다. 특히 요즘 금융권의 시선은 온통 신임 금융감독원(금감원)장이 누가 될지에 쏠려 있다. ‘금융검찰’로 불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금감원 수장에 어떤 성향을 가진 인물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향후 5년간 금융사들의 경영전략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차기 금감원장 후보로 떠오른다. 참여정부 시절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근무한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 문재인 캠프에서 경남권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그간 금감원장 자리에는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 관료 출신과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거론됐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 인사 자리를 두고 물밑 검증을 벌여온 청와대가 막바지 검증 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르면 이달 안에 인사가 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던 자리에 대한 인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체 가능성이 높은 수장자리만 10여 곳이 거론되면서 차기 수장자리가 코드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BNK금융 회장 후보로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거론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출신에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다. 금융권은 김지완 회장 후보를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보고 있다. 금융권 수장자리에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자신의 거취 문제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와 면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빠른 시일 내에 사퇴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DGB금융은 거래소나 산은과 달리 민간 금융회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민간 금융권 내에서 대표적 친박 인사로 분류된 데다 최근 경찰이 대구은행을 상대로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정연대 코스콤 사장은 임기가 끝났지만 아직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코스콤은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은 상황이다. 2014년 5월 부임한 정 사장은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친박 인사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코스콤 노조 측은 당시 정 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으로 대선 당시 지지선언을 했던 점을 문제 삼으며 보은인사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을 비롯해 일부 금융기관장들이 물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들 가운데 주목받는 인물은 황영기 회장과 하영구 회장이다. 황 회장은 2015년 당시 김기범 전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사장과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를 제치고 최종 당선됐다.
증권가의 황 회장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날을 세우며 업계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가 많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와 법인지급결제 업무 허용,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지난해와 올해 많은 이슈가 있었다. 이밖에도 신탁업법을 분리해 은행에 자산운용업을 허용하는 불특정금전신탁도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연임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아 임기 완료 후 퇴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미 금융권에서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과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전 사장 등이 협회장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22개 회원사를 가진 전국은행연합회와 관련해 세간의 관심은 차기 회장도 민간 출신이 맡느냐 여부다. 한미은행장과 한국씨티은행장을 지낸 현 하영구 회장은 2014년 선임 당시 11년 만의 민간 출신이라는 점이 거론됐다. 일각에서는 민간 인사의 단점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여신금융협회 부회장과 저축은행중앙회 전무 자리는 공석이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에도 민간 출신이 회장직을 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금융기관들도 이번 인사에서 영향을 받을지 관심이 모인다. 황록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10월이고,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임기는 2019년 12월까지다. 수출입은행장과 SGI서울보증 사장, 수협은행장 등은 현재 공석이다. 김재천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의 임기도 오는 10월에 끝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코드 인사가 반복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같은 기관장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면서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임기를 보장하고 경영능력에 근거해 기관장 교체 여부를 결정하는 문화가 아쉽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