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서울 불바다’ 막말의 시작은 1994년 3월 판문점 남북군사실무접촉 때 북의 대표 박영수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 뒤로 북측의 협박은 남북 간에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20년 넘게 되풀이 됐고, ‘청와대 불바다’ ‘일본 불바다’ ‘미국 백악관 불바다’를 거쳐 ‘미국 전토 불바다’로 수위가 높아져 왔다.
트럼프 발언이 나오기 전인 6일에도 북한 로동신문은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최후의 수단도 불사할 것’이라며 ‘미국 본토는 상상할 수 없는 불바다로 빠지게 될 것’이라고 썼다.
핵무기를 쓰겠다는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만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협박이 과도하거나 너무 잦으면 협박처럼 들리지 않는다. 북한의 불바다 협박에 무덤덤한 우리 사회의 반응도 북한에 의한 ‘양치기 소년 효과’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미국 내의 반응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 지가 사설에서 ‘무모하고 불필요한 발언’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대통령이 어디 닮을 사람이 없어서 불량 지도자 김정은을 닮느냐는 비야낭도 쏟아졌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외교수사를 이해할 줄 모르는 김정은이 알아듣도록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한 것이 그중 그럴듯한 해명이었다. 국무장관은 외교관이라 그렇다 쳐도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가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장 등 국방 안보 분야의 주요 인물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반대라도 하듯이 전쟁방식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을 강조했다. 의회 쪽에서도 같은 반응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대통령 혼자만의 판단만으로 전쟁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나라이다. 대통령과 참모는 물론 의회의 합의에 의해서 내려지는 결정이다. 문제는 김정은의 의사결정이다. 그는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전쟁을 말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명령만 내리면 결사 옹위하겠다는 맹종 세력만 있지 ‘아니오’를 말할 세력이 존재할 수도 없다.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10만 명의 군중대회를 열어 대미 전쟁불사를 결의한 데 이어 북한 전역에서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군중대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겁 많은 개일수록 요란하게 짖는 것이라고 보아 넘겨도 되나?
김정은은 15일 전략사령부를 시찰한 자리에서 전쟁임박설의 원인이 되었던 미국령 괌에 대한 미사일 포위공격 협박에서 “미국 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것은 트럼프의 말폭탄에 겁을 먹은 탓으로 보이나 시찰현장 사진을 보면 그의 등 뒤에 대남 미사일 공격목표가 그려진 ‘남조선 작전지대’ 지도가 걸려 있었다. 우리의 긴장은 멈출 수 없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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