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안보불감증이다. 미국을 향해 ‘어떻게 좀 해 봐 주세요’ 하는 의식들이 퍼져있다. 미국은 과연 구원의 천사일까. 한미동맹은 등뼈 같은 안전보장책일까.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대해 고마워할 건 고마워하자. 그러나 6·25전쟁 시 중공군이 개입하자 백악관회의에서는 어떻게 하면 국제적으로 망신당하지 않고 빠져나갈 것인가를 궁리했다. 모택동에게 평택을 경계로 휴전을 하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베트남전쟁에서의 패배도 굴욕적인 상처로 남아있다. 핵개발에 성공한 북한이 미국과 맞서고 있다. 백악관은 한국을 제치고 미군철수 카드를 꺼내들고 협상에 나선다는 얘기가 돈다. 국민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나라라는 자조적인 의식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아왔을까. 어린 시절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나라였다. 거지가 우글거리고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나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병사로 전방고지에서 싸웠다. 아들인 나는 아버지가 지키던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근무했다. 얼어붙은 밤하늘의 별 아래서 순찰을 돌면서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개개인이 존중받는 자유로운 민주사회였다. 내가 차고 있는 권총은 유사시 비굴하지 않게 삶을 마감하는 도구라고도 여겼다. 보기 전에는 적에게 유령처럼 겁을 먹어도 막상 마주 대하면 그들 역시 보통사람이었다.
적이 총을 한방 쏘면 화력 좋은 발칸포를 사용해서 백배 보복을 하겠다는 게 전방군인들의 의지였다. 유사시 고지에서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죽음으로 이 나라를 사수하겠다는 의식이었다.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 잘 살아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품삯을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그곳에 온 대통령과 함께 짙은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세계8위의 수출대국이 되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발전모델이 됐다.
나 같은 베이비 붐 시대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피땀 흘려 만든 나라다. 더 이상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친일파와 지주의 나라가 아니다. 반세기 동안 보통사람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눈부신 성취가 국가의 정신적 정체성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운명은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터 대통령이 미군철수를 통보했을 때 우리대통령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나라를 스스로 지키겠다고 했었다. 전쟁수행능력도 현대에서는 결국 돈이다. 북쪽보다 잘 사는 우리가 그들에게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자신감이 아닐까.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이 핵보다 더 무서운 병기라고 생각한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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