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신태용답지 않은 축구 하다 자충수…우즈벡전 선수들 부담 줄이는 게 관건”
<일요신문>의 취재에 응한 축구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유효 슈팅이 1개도 없다는 사실과 선수 교체 타이밍이 늦은 이유, 중국이 우즈베키스탄을 1-0으로 앞선 상황에서도 우리가 이란의 골문을 압박하지 못한 데 대해 의문점을 나타냈다. 한국은 이란전 5경기 연속 무득점과 무승(1무 4패)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안았고, 무승부임에도 마치 홈에서 패배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축구대표팀이 치른 이란전에 대한 경기 분석과 앞으로 있을 우즈베키스탄전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축구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 이란전을 복기해 보니
축구 국가대표 기술분석관을 역임한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이란전을 본 후 “감독이 바뀌었는데 경기 내용이나 전술이 이전과 비교해서 거의 바뀌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열정적으로 뛰어 다녔고, 전체적으로 수비 밸런스가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볼을 점유했을 때 어떻게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전혀 준비가 안됐다. 그걸 잔디 탓으로만 돌리기엔 우리 선수들의 실력과 컨디션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아무리 상대의 수비가 강하다고 해도 볼을 점유한 상태에서 좌우 전환을 시도하며 골문을 향해 빌드업 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점이 너무 부족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단순해 보였다. 손흥민, 황희찬의 움직임은 특히 아쉬움을 안겨줬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의 공간을 침투해 들어가야 하는데 이란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아쉬워 하는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전북 현대를 이끌고 있는 최강희 감독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좀처럼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홈에서 승부를 걸었어야 하는데 결과가 너무 아쉽다. 손흥민(토트넘), 권창훈(디종),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유럽파가 제몫을 해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상대가 퇴장당한 이후의 신태용 감독의 대응에 안타까움이 있다. 퇴장이란 천운을 안았다면 바로 김신욱, 이동국을 투입해서 라인을 끌어 올리고 가둬놓으면서 밀어 붙였어야 하는데 우리가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 세컨볼 싸움에도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압도하지 못하면서 잦은 실수가 나타났다. 경기를 보면 상대 선수의 숫자가 한 명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리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승부를 내지 못한 부분이 향후 대표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할 따름이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 조금 다른 시선을 나타냈다. 신태용 감독이 최선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결과를 내려 한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이란전은 전혀 신태용 감독다운 경기가 아니었다. 신 감독은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란전에선 자신의 축구 철학을 내세우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내 본선 진출에 성공하려고 수비 위주의 공격을 펼친 것 같다. 한두 번쯤은 자신의 색깔대로 밀어 붙였어도 될 것 같았는데 끝까지 참고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했다. 그 이유는 한 가지다. 결과를 내려 했기 때문이다.”
대표팀 선수들의 경기력 관련해선 경기의 조율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드필드 진영에서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고 흐름을 이끄는 조율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원래는 그 역할을 기성용이 맡았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입된 구자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기의 완급 조절 능력이 아쉬웠다. 선수들이 모두 서두르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더라. 반면에 이전 슈틸리케 감독 밑에서 보인 답답함은 많이 사라졌다고 본다. 슈틸리케 감독 때는 선수들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를 몰랐는데 신태용호의 선수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뛰는 듯했다. 물론 팀 전력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이 부분은 이란전보다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좀 더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축구 에이전트 A 씨는 “신태용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축구를 하면서 자충수를 뒀다”고 표현했다.
“국가대표 코치, 올림픽, 청소년 대표팀 등을 두루 거친 신태용 감독이지만 A매치 데뷔전이었던 이란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감독이 긴장하면 선수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경기 중 중국이 1점으로 앞서고 있다는 걸 전해 들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축구를 하지 못한 게 뼈아픈 실수로 귀결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신태용 감독. 연합뉴스
<일요신문> 인터뷰에 응한 4인의 축구 전문가들은 모두 신태용 감독의 교체 타이밍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세연 축구 평론가는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선수 교체를 시도하면서 전술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런 작전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서 “후반 27분이 돼서야 이재성 대신 김신욱을 교체했고, 두 번째 교체 카드를 수비수로 썼다는 것과 이동국을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투입시켰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을 해결사로 데려갔다면 경기 종료 3분이 아닌 후반전 이후 교체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면서 “신 감독이 경기 종료 시간을 3분이 아닌 30분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A매치의 경우 대표팀 벤치에 있으면 협회 직원이 5분마다 상대팀 스코어를 알려준다. 즉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전의 경기 내용을 귀띔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신 감독은 중국이 1점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걸 알고도 선수 교체를 빨리 시도하지 않은 게 의문이다. 한 골만 넣으면 끝나는 경기인데 왜 그걸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감독은 경기에 앞서 5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짜서 나간다. 전반전 0-0일 때의 상황, 60분이 지났는데도 0-0일 때의 전술, 그리고 꼭 이겨야 하는 경기라면 4-4-2 포백을 쓰면서 투톱을 앞세워 밀어 붙여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최 감독은 신태용 감독이 지지 않는 경기를 하려 했다는 기자의 전언에 “야구에서 4번과 5번타자를 거르고 7번 타자를 상대했다가 끝내기 홈런이나 안타를 맞을 수도 있다”는 비유를 들었다.
“대표팀 경기 보면서 이렇게 흥분한 것도 처음이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신 감독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지만 오늘처럼 밥상이 다 차려진 경기에서 숟가락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는 건 굉장히 아쉽다. 공격수는 수비하라고 내보내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즈베키스탄전이 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더 안타까움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박문성 해설위원도 신태용 감독의 교체 타이밍이 늦었다고 지적했다.
“지지 않으려고 경기했던 신 감독의 작전이라면 (늦은 교체 타이밍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상대가 퇴장당한 상황이라면 교체 타이밍을 빨리 가져갔어야 했다. 그리고 황희찬이 오른쪽 무릎을 다친 상태라 압박 붕대를 감고 뛰었는데 90분을 다 뛰게 한 부분도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최악을 피하려고 했던 신 감독의 작전이 90분 내내 답답하고 지루한 축구를 만들었다.”
# 그렇다면 우즈베키스탄전은 어떨까
한국은 오는 6일 0시(한국시각) 우즈베키스탄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열릴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이 경기를 이기면 한국은 승점 17점을 확보, 자력으로 이란과 함께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비기면 경우의 수가 복잡해진다. 한국은 이란전 이후 간신히 2위를 유지했지만 시리아가 카타르를 꺾고 3위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비기고 시리아가 이란을 이길 경우 승점은 15로 같아지지만, 골득실에서 시리아가 최소 한 골을 앞서기 때문에 시리아가 2위, 한국이 3위가 된다. 한국이 패하면 시리아-이란전 결과에 따라 A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가거나 아예 4위로 밀려나 예선에서 탈락한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강희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염려했다.
“우즈베키스탄전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를 상대하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 것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탈락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쫓기는 마음으로 경기하게끔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란전처럼 경기 운영을 하게 되면 큰 재앙을 입을 수 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를 세심히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럽파들의 시차를 걱정했다.
“유럽에서 온 선수들은 한국 시차와 우즈베키스탄 시차에 적응해야 한다. 대표팀의 중심 선수들이 유럽파이기 때문에 이들의 컨디션은 팀에 굉장히 중요하다. 모든 선수가 부담을 안고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김세연 축구 평론가는 “볼을 점유한 이후 좌우 전환으로 움직임을 많이 가져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공격수들의 전방에서의 움직임과 세트플레이의 정교함, 그리고 신태용 감독이 어떤 축구를 할 건지 분명한 노선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축구 에이전트 A 씨는 이란전을 통해 드러난 잔디 논란에 대해 FC 서울을 예로 들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FC 서울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FC 서울 선수들이 잔디 때문에 유효슈팅을 때리지 못했나. 공격수들이 엉망인 잔디에 스텝이 얽혀 넘어졌었나. 자신의 실력 부족을 잔디 탓으로 돌리는 일부 선수들의 발언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지지 않는 경기 말고 이기는 경기 하라” 신태용호에 건네는 최강희 감독의 팁 최 감독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신태용호’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넸다.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는 열흘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전주에서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을 치르며 유럽파로는 박주영, 기성용만 뽑았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선수들의 몸 상태가 K리그 출신 선수들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전에선 65분 동안 상대에 끌려 다녔다. 우린 경기를 지배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이동국이 선제골을, 이근호가 추가골을 넣으면서 2-0 승리를 거뒀다. 무승부만 거둬도 최종 예선 진출이었지만 홈경기에서 이기고 당당하게 최종 예선에 진출하려 했던 게 끝까지 공격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원정은 나도 경험해봤지만 돌발 변수가 많은 지역이다. 경기장도 어둡고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응원전을 펼치고, 특히 우즈베키스탄이 홈경기에 강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란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도 이란전을 통해 느낀 바가 많을 것이다. 부디 심기일전해서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치고 귀국할 때 활짝 웃으면서 들어오길 바란다. 이란전 이후 팬들의 비난과 실망의 목소리가 컸지만 그 또한 한국 축구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의미 아니겠나. 대표팀 선수들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부상 없이 우즈베키스탄 경기를 잘 마치고 왔으면 좋겠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