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만들어 쌓아둔 공예품들이 이렇게 상품이 되고 팔린다는 게 너무 신기해.”
생기가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옆의 좌판에는 작은 액자에 담은 그림들이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머리가 긴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가 말했다.
“제가 화가로 등단하는 게 꿈인데요. 그동안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여기 이 그림들은 이 연남동 일대를 그 특징에 따라 그린 거예요.”
골목의 깊은 안쪽에 팔십대쯤의 할머니가 손때 묻은 오래된 작은 재봉틀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뒤의 돌축대에는 낡은 원피스 몇 벌이 걸려있었다.
“할머니 이 옷 파는 거예요?”
지나가는 여자가 물었다.
“아니 예요,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
“돈을 받지 않고 그냥요?”
“그럼요, 별거 아닌 것 같은 바느질 기술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노인의 얼굴에 사명을 수행한다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스친 풍경이었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하는 일 자체가 기쁨이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닐까. 세계에서 최고의 크루즈선인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호를 잠시 타본 적이 있다. 떠다니는 천국으로 알려진 그 호화유람선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게 서양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턱시도를 입은 제임스 본드 같은 미남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매일같이 흥겨운 연주음악 속에서 춤을 추고 은촛대와 투명한 와인글래스가 놓인 식탁위에서 사람들은 최상의 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뉴욕에서 출발한 배는 파나마 운하를 지나 하와이와 타이티 그리고 뉴질랜드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었다. 카지노 영화 쑈등 최고수준의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종업원들이 예전의 하인같이 승객들을 섬기고 있었다. 먹고 자고 놀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배가 이주일 정도 태평양을 흐르자 승객들의 표정이 시큰둥해졌다. 더 이상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승객들의 행동이 변하고 있었다. 어떤 영국인남자는 구석에서 둥그런 나무틀에 하얀 천을 끼워놓고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 어떤 여자는 가지고 온 스케치 북에 그림만 그렸다. 티타임이 되면 주변의 승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는 영국여인이 있었다. 평생 고등학교에서 선생을 했다고 했다. 파티보다 사람들은 자기가 해 왔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걸 발견했다. 사건사고가 없는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무료함을 견뎌내지 못했다. 일부러 작위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그걸 선내 방송과 티브이로 중개하기도 했다. 수영장 옆에서 몸에 페인팅을 한 사람을 누가 뒤에서 밀어 물에 떨어뜨리는 이벤트였다. 그 작은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다.
근심 걱정이 없고 일도 없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편안한 지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희랍인 조르바는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말썽을 향해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편안한 지옥을 구경하고 나서 일의 소중함을 느꼈다. 세상에 특별히 큰 일은 없다. 자기가 익숙하게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소명이자 축복이다. 사람에게는 외부에서 그를 눌러주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그런 압력이 없으면 인간은 내부로부터 터져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