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여왕벌’ 멕시코를 유혹하다
▲ 지난 9월 검거된 마약밀매조직 ‘시날로아’의 여두목 산드라 아빌라 벨트란. 연합뉴스 | ||
지금 멕시코는 ‘미모의 여두목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검거된 마약밀매조직 ‘시날로아’의 여두목인 산드라 아빌라 벨트란(46)이 열풍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멕시코 국민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빼어난 외모와 우아한 태도 때문이다. 그녀는 체포되는 순간은 물론, 구치소와 재판장에서도 항상 우아하고 자신감에 넘친 태도로 일관하면서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여기에 ‘금녀의 구역’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마약밀매조직에서 당당하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영화 같은 삶도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고 있다.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와 관심 속에 연일 멕시코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벨트란 신드롬’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9월 28일 멕시코 시티의 한 체인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벨트란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혐의는 마약밀매 및 돈세탁, 범죄모의 등이었다.
체포 당시 그녀는 온몸을 값비싼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으며, 끝까지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멕시코 경찰은 전했다.
구치소로 이송된 후에도 그녀의 당당한 태도는 계속됐다. 신원확인 진술을 하기 전에는 “화장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화장을 곱게 마친 후에야 비로소 카메라 앞에 선 벨트란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밝히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경찰 심문에서는 한사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던 그녀는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다”라고 주장했다. 부업으로 옷가게를 하고 있으며, 집에 세를 놓으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수줍은 듯 애교를 떨기도 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반복해서 방송을 타자 멕시코 국민들은 그녀의 묘한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그녀가 경찰에서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면서 진술하는 내용의 영상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4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이런 우아한 태도는 단 한 순간도 무너지는 법이 없었다. 체포되고 난 후 일주일 후에 다른 구치소로 이송될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당당한 모습이었다. 경찰에 이끌려 구치소 밖으로 나올 때에도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몸에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누가 봐도 구치소로 끌려 가는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한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는 여성 경찰과는 웃으면서 몇 마디 주고받는 등 시종일관 느긋한 태도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구치소에서 비누 하나를 더 달라고 요구했는가 하면 변호사에게는 화장품을 더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카메라 앞에 나가기 전에는 항상 화장할 시간을 따로 요구하는 등 절대로 ‘쌩얼’로 카메라 앞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재판 중에도 예의 당당함을 잃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혐의를 줄줄이 낭독하는 법원 관계자에게 “아, 그만 읽으세요. 이미 다 외우고 있거든요”라고 빈정거렸는가 하면 판사에게는 “여왕이라고 불린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에요”라며 능청을 떨기도 했다.
이런 태도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그녀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했다. 그녀가 검거된 후부터 멕시코 라디오에서는 그녀를 칭송하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로스 투카네스 데 티후아나’ 그룹이 2004년 작곡한 이 노래는 한 마약밀매조직의 생일 파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곡으로, 여기에는 그녀를 지칭하는 가사도 포함돼 있다. 그녀를 가리켜 ‘아름다운 태평양의 여왕’이라고 묘사한 이 노래는 “여왕이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하네.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톱 레이디”라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서 험하디 험한 마약밀매조직에서 두목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을까. 그녀가 여성으로서 마약조직의 실세가 된 데는 가족의 영향력이 컸다.
다름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마약밀매에 몸담고 있던 가족들 틈에서 자랐던 것. 이들 중에는 그녀의 삼촌인 ‘멕시코 마약밀매의 대부’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인 미구엘 앤젤 펠릭스 갈라르도도 있다. 이밖에 후안 호세 킨테로 파얀이라는 거물급 두목이 그녀의 삼촌이며, ‘아렐라노 펠릭스’ 조직의 여자 두목인 에네디나 아렐라노 펠릭스 역시 그녀의 먼 친척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마약밀매조직에서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그녀의 일곱 살 연하의 연인 후안 디에고 에스피노사 라미레스(39)가 콜롬비아 최대의 마약조직인 ‘노르테 델 바예’의 부두목이었다는 사실 덕분이다. 벨트란은 라미레스와 연인관계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조직과 라미레스의 조직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더 타이거’라고도 불리는 라미레스는 두목인 디에고 몬토야가 지난 9월 초 검거되면서 실질적인 두목으로 활동해왔다. 또한 그는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통틀어서 검거대상 1순위에 오를 만큼 거물 중의 거물로 손꼽혀 왔다. 그는 벨트란이 체포된 후 일주일 만에 검거돼 수감됐다.
마약조직 두목들과의 로맨스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여러 조직의 거물들과 연인 관계를 맺으면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자신의 조직인 ‘시날로아’의 두목이었던 이스마엘 잠바다와도 한때 연인 사이였으며, 또 다른 거물인 이냐치오 코로넬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녀가 처음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멕시코 경찰은 벨트란이라는 ‘여왕벌’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사니요항에서 9t의 코카인을 적재한 참치선박이 적발되면서 곧 그녀의 존재는 세상에 드러났다. 이 선박의 소유주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벨트란의 10대 아들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급한 마음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벨트란은 납치범들이 500만 달러(약 46억 원)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몸값이 너무 많다고 판단, 벨트란을 더욱 더 주시하게 됐다.
또한 벨트란이 직접 납치범과 협상을 진행하자 이런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협상 끝에 결국 300만 달러(약 27억 원)의 몸값을 지불하고 아들을 되찾아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벨트란은 그보다 적은 액수였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줄곧 멕시코 마약단속반과 경찰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왔던 그녀는 결국 6년 만에 꼬리가 잡혀 검거되고 말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