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억척주부’ 밖에선 ‘명참모’
▲ 후쿠다 총리의 아내 기요코는 2002년 부시 대통령 부부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관방장관의 부인 자격으로 로라 부시를 안내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이혼한 상태였다. 로이터/뉴시스 | ||
부인 기요코(63)는 겉보기엔 다소곳한 현모양처 타입이지만 기자나 자민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슈퍼우먼’이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소탈하면서도 담대한 여장부로 통한다. 일본의 대중지 <주간포스트>는 최근호에서 기요코에 대해 “지루한 남편보다 열 배 재미있는 새로운 퍼스트레이디”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물간 자민당의 늙은 멤버들이 모두 돌아온 듯한 ‘좀비 내각’으로 벌써부터 단명할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있는 후쿠다 정권과는 달리 퍼스트레이디인 기요코의 인기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는 인터넷 등에서 기요코에 대한 자료나 사진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이미지는 기모노 차림에 항상 남편의 뒤를 따라서 걷는 ‘조신하고 전통적인 일본 여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기요코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소탈하고 재치 있으며 담대한 성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후쿠다 총리의 선거구인 군마 현에서는 “후쿠다 총리의 최고 참모는 바로 기요코 부인”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많은 일을 소화해내는 슈퍼우먼이다. 사실 무뚝뚝하고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후쿠다 총리가 정계에서 이만큼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총리였던 아버지의 후광도 있지만 사실 기요코의 세심한 내조 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요코는 후쿠다 총리가 관방장관을 하던 시절부터 그를 취재해온 담당기자들을 불러 손수 만든 음식이나 고급 와인을 대접하거나, 담당기자들을 일일이 기억해 매년 편지를 보내고 OB회를 여는 등 기자들에게 무뚝뚝한 남편을 대신해 ‘언론 관리’의 수완을 보였다.
남편의 선거활동을 도우며 인사를 다닐 때는 유권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늘 허리와 무릎을 숙이느라 요통이 생겨 고생하기도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조차 주위 사람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하며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 남편에게 전해주곤 했다.
그녀는 다소곳함과는 거리가 먼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1990년대 처음으로 후쿠다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거사무소 앞에 모인 지원자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자 기요코가 “모두 기다리고 계시니 그 기대에 부응해야죠!”라며 남편의 엉덩이를 툭툭 때려서 내보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35년 넘게 기요코에게 다도를 가르쳐온 한 유명인사에 따르면 “1년 전 아베가 총리로 취임했다는 보도가 발표되던 당시 기요코 부인은 다도를 하고 있었다. 아베와 총리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남편의 상황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다실에서 전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도에 열중했다”고 하니 그녀의 담대한 기질과 침착함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명문가 출신이라는 그녀의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요코의 아버지는 <마이니치신문>의 전 사장이고 어머니는 대장상의 딸로 정·재계에 걸쳐 유명한 집안 출신이다. 그녀 본인도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학생 때는 170㎝가 넘는 장신을 이용하여 배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비행기 승무원이 되기를 바랐던 그녀는 취업 상담을 위해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를 찾아갔다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한 미래의 시아버지에게 “우리 집안에 영구 취직하라”는 제안을 받아 당시 회사원이었던 후쿠다 총리와 결혼하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은 지극정성으로 정치가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후쿠다 총리에게 “정치가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건 다른 사람을 시키거나 대충 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는 그녀의 행동력과 결단력은 자식 교육과 집안 살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바쁜 정치가 남편을 내조하면서 2남1녀의 자녀의 육아에도 소홀하지 않았는데 그중 장남은 이번에 총리가 된 아버지의 정무비서관이 됐다. 자민당의 한 여성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기요코 부인은 선거와 육아로 아무리 바쁠 때도 가사 도우미를 두지 않았다. 부인이 너무 바쁘게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내 며느리를 부인댁으로 보내 일을 돕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녀는 이미 국제 외교 무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2월 미국 부시 대통령 부부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관방장관의 부인이었던 그녀가 로라 부시를 안내했던 것.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혼한 상태였다.
당시 도쿄 니시아자부의 ‘곤파치’라는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에서 양국 정상이 저녁 겸 회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곳을 고른 사람도 바로 기요코였다. 부시 대통령은 “일본 서민이 먹는 음식맛을 보고 싶다”고 요청을 하자 후쿠다 관방장관이 선술집 마니아인 기요코에게 ‘특명’을 내린 것. 그녀는 직접 10군데 이상의 가게를 돌아다니며 이 집을 찾아냈다고 한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