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많이 비겁했고, 우리도 많이 비겁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비겁하지 않게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살아있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김이수 재판관이다. 통진당 해산 당시 소수의견을 낸 유일한 재판관이 바로 그다. 통진당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는 선명하고 섬세한 논리로 통진당 해산은 반대했다. 통진당이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단순히 확립된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는 민주국가에서 금지되는 행위가 되지 않으며, 진보적 의제 제기에 앞장서 온 역사를 가진 정당에 해산심판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것이 통진당의 문제점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 했다.
그의 입장은 외로웠다. 그의 입장이 외로웠던 것은 지금 자유한국당에서 주장하듯이 그가 ‘빨갱이’라서인가. 아니다. 이유가 있다면 우리 모두 비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4:5에서 6:3까지만 나왔더라도 미세한 두려움이 공기처럼 떠돈 시절 때문이라는 변명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8:1이었다. 그만이 해산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박근혜정권의 권력이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던 그 시절, 정권의 입장에 반하여 소수의견을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차범근의 말처럼 “직장이 너무 번듯한” 사람들인데. 그때 나는 비로소 헌법을 수호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배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그 사건을 들며 그를 헌재 소장으로 지명했다. 모두가 비겁했던 그 시절에 홀로 용감히 헌법정신을 수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그에게 걸맞은 자리였다. 그런데 바로 헌재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준 그 판결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오죽하면 한 신문은 지난주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김이수 110일의 영욕사”란 제목을 달았을까. 그가 헌재소장으로 지명된 벌써 4달이 지났는데, 국회는 언제 그를 헌재소장으로 임명동의해줄 것인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