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 빼 윗돌 괴기’ 가장 많이 가장 크게 당했다
지난해 700만 관객을 넘게 불러 모은 영화 <마스터>의 대사다. 이 영화는 조 단위 사기꾼으로 꼽히는 조희팔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조희팔 사건에는 ‘단군 이래 최대 사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놀랍게도 국내 사기 사건 중에는 조희팔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수법도 아이템도 닮았고 억 단위부터 조 단위까지 피해금액이 발생했다. 최근 발생한 사기 사건들의 전말을 되짚어봤다. 이것만 읽어도 내 주머니에서 나올 수천만 원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조희팔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씨가 대구 경북에서 피해자들에게 의료기기를 사면 이를 다른 사람이나 모텔, 찜질방 등에 빌려줘 수익을 낸다고 홍보하면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사람이 5년 동안 약 5만 명에 달한다. 추산 피해금액은 대략 4조 원이다.
조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빠졌던 이유는 조 씨가 30%의 높은 이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쪼개 자주 지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 씨가 말한 사업 모델은 거짓에 불과했다. 새롭게 투자한 사람의 돈을 앞에 투자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폰지사기에 불과했다. 조 씨는 전국에서 다른 사명을 써서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모든 폰지사기가 그렇듯 어느 정도 금액 수준에 도달하면 수익금을 줄 수 없는 시점이 온다. 조 씨는 수익금 지급 중단부터 피해자들이 문제제기할 시점까지를 시뮬레이션하면서 도주를 계획했다. 2008년 10월 조 씨는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중국으로 밀항해 사라졌다.
피해금액이 워낙 크고 피해자도 많아 조 씨가 중국으로 숨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망은 좁혀왔다. 그러던 2012년 5월 조 씨 가족은 조 씨가 원한 관계 세력에게 청부 살인을 당해 죽었다며 중국에서 찍었다는 장례식 영상을 공개한다. 어설픈 장례식 영상, 수상한 사망인증서 등 많은 의혹이 남았으나 조 씨의 사망신고가 접수돼 인터폴에 의한 수배가 해제됐다. 조 씨가 살아있다면 완전범죄에 성공한 셈이다.
조 씨만큼 피해금액이 크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사건이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까닭은 이 씨가 TV 증권방송에서 주식을 추천해 주는 ‘전문가’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호화 생활을 예능에서 보여 인지도와 친근감도 높았기 때문이다.
수영장이 있는 호화로운 저택. 주차장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차들이 나란히 서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에 4대밖에 없다는 슈퍼카 ‘부가티’까지 보여준다. 이 씨 피해자들은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사기를 칠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예능에서 패널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경제전문 채널에서 주식을 추천하는 모습에 신뢰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장외주식을 사서 사람들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약 2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파는 장외주식을 살 수 있는 회사로 각기 다른 회사처럼 3곳을 안내했지만 이들 회사의 대표는 이 씨의 어머니, 친구, 동생 등으로 그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회사였다.
이 씨는 방송에서 매수 추천할 때도 과장을 섞었다. 이 씨는 “손해 나는 금액은 사비로 다 부담한다고 약속드린다”라거나 “상장 시 10조 간다, 사면 무조건 먹어요” 등 확정적 표현을 남발했다. 이 같은 호언장담과 달리 그에게 주식을 산 사람 중에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네이처리퍼블릭 같은 주식은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면서 폭락했다. 피해금액은 그가 번 돈보다 훨씬 클 전망이다.
단순히 장외 주식만 팔진 않았다. 여러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 중에도 사기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미라클 E&M’이라는 회사는 온라인에서 재테크, 뷰티, 쿡방 등의 콘텐츠를 공급하는 MCN 회사다. 이 회사에 홍석천 씨가 ‘미라클 쿡’이라는 쿡방을 진행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홍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풍문쇼>에서 같이 방송했던 이희진과 쿡방을 할 거라는 등 소속사 운운하는 영상을 오늘 확인했는데 절대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린다”고 말했다. 이희진 씨는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0월 내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이희진 사건보다 덜 알려졌지만 훨씬 큰 피해금액이 발생한 주식 사기 사건이 있다. 2011년부터 시작돼 2016년까지 계속된 IDS홀딩스 사건이다. 범죄 수익 측면에서 보면 조희팔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다. 김성훈 IDS홀딩스는 대표가 챙긴 돈이 약 6000억 원으로 추산돼 약 3000억 원인 조희팔 사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IDS홀딩스 사건은 같은 주식을 통한 사기지만 이 씨처럼 장외주식이 아닌 더욱 전문적인 FX 마진 거래가 주 아이템이다. 김 씨는 FX 마진 사업에 투자하면 월 1~10% 배당금을 지급하고 1년 내 원금을 상환한다며 1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1조 원 이상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김 씨는 올해 초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투자자문 사기도 활개를 쳤다. 금융투자를 통한 수익금을 약속했지만 실상은 제대로된 투자자문 회사가 아니거나 아예 투자자문업 인가조차 받지 못한 곳인 경우가 있었다. 이숨투자자문은 투자자문업 인가조차 받지 못한 경우다.
2015년 3월부터 8월까지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와 임직원들이 투자자 3000여 명으로부터 해외선물투자를 통해 원금과 매월 2.5% 상당의 투자수익금을 보장하겠다며 약 1380억 원의 투자금을 모집했다. 다른 사기처럼 역시 앞선 투자자에게 돌려막기 식으로 지급했을 뿐 제대로 된 투자활동은 없었다. 송 씨는 징역 13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송 씨가 중형이 확정되기 전 1심에서는 징역 4년이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때 송 씨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최유정 변호사를 선임했고 징역 4년을 집행유예로 만들어줬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구속된 김 아무개 한독투자자문 대표의 경우는 좀 더 대범하다. 원금과 연 최대 70%에 달하는 높은 투자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약 300억 원을 챙긴 수법은 이숨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독은 금융감독원에 등록돼 관리를 받는 제도권 투자자문회사였다. 김 씨는 21억 원을 들여 금감원에 등록된 투자자문 회사를 인수한 뒤 한독투자자문으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또한 김 씨는 금감원에 제출하는 주식운용보고서도 허위로 작성하고 회사 홈페이지 대표 소개란에 명문대 졸업, 펀드매니저 경력 등을 거짓으로 기재했다. 김 씨는 언론 홍보까지 나서는 등 간 큰 행동을 이어갔다.
의료기기, 주식을 넘어 한때 돼지를 통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제일 유명한 사건은 ‘도나도나’ 사건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기승을 부린 이 사건은 어미 돼지 1마리당 약 500만 원을 들여 돼지사육업체 도나도나에 투자하면 이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를 20마리 낳아 매달 일정 수익금을 줄 수 있다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다.
얼핏 보면 돼지가 새끼를 낳으니 수익이 날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돼지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운영비, 인건비, 사료비 등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도 약 1만 명의 돈 2400억 원의 피해금액을 남겼다.
다소 황당한 것은 이 사건을 주도한 최덕수 대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1심에서 최 씨의 유사수신행위를 무죄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최 씨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2000억 원 넘는 피해금액에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2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사건의 변호인은 홍만표 전 대검 수사기획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이들이 부적절한 전관예우를 통해 사기꾼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 같은 의혹이 번지면서 결국 대법원에서 유사수신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최 씨는 징역 9년을 아들 최지원 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됐다.
도나도나 사건이 1심 무죄가 났기 때문일까. 돼지를 이용한 사기 사건이 또 다시 터졌다. 지난 2014년 아모스영농조합은 획기적으로 개선한 10분의 1 수준 가격 돼지사료를 통해 사육 비용을 현저히 줄이는 돼지 사업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남우 전 아모스영농조합 대표는 “(값싼 사료를 통해) 새끼돼지를 1마리당 15만 원에 구입하여 이를 70만~80만 원에 판매해서 수익을 얻으면 된다”고 홍보했다. 실제로는 이 씨가 돼지를 사육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이미 도나도나 사건이 한 번 휩쓸고 다시 돼지 아이템을 들고 나왔기 때문일까. 이 사건에는 청년보다는 정보에 취약한 노인들의 피해가 컸다. 월 30% 달하는 수익금을 지급한다는 말에 노인들은 이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퇴직금, 연금은 물론이고 신용카드까지 긁어서 투자했다. 이 씨는 지난달 징역 4년 실형에 처했다. 피해금액이 크고 노인들을 노렸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쁜 데도 불구하고 형량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사기도 유행이 있어 최근에는 가상화폐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6월 비트코인과 비슷한 새로 나온 가상화폐라며 팔다 수사기관에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달리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 가상화폐였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사기꾼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했고, 공시한 가격을 믿고 거래한 피해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
가상화폐를 만들었다며 가상화폐 발행 사업에 투자하라는 사기도 있었다. 지난 5월 부산에서 적발된 이 사건은 ‘가상화폐 발행 사업에 투자하면 6개월 뒤 원금의 3~5배를 준다’ ‘최고 1만 배 수익을 챙길 수 있다’며 속였다. 이렇게 챙긴 돈이 약 600억 원에 달했다.
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말한다. 한 번만 다시 생각했다면 피했을 일을 욕심이 눈을 가렸다고 말한다. 이희진 사건의 한 피해자는 “나는 수익에 잠시 눈이 멀어 투자했다“며 ”비현실적인 수익을 보장한다고 유혹하면 한 번만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